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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Jul 22. 2024

내 삶의 믿을 구석, 일상

작지만, 크다.


아들은 또 짐을 쌌다.

방학이라고 집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국외위탁프로그램을 다녀오더니, 

이틀 만에 또 연구과제를 하러 가야 한단다.


방학땐 조금이라도 함께 있는 시간을 기대했는데, 

역시나 또 집을 나선다.


내 마음을 모르는 건지, 이동하는 안에서도 내내 그간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들과 카톡, 인스타에만 빠져있는 아들.


좀처럼 그런 마음 거두고 살았는데, 

오늘은 진심으로 그의 행동이 섭섭했다.


처음엔 조심스레 시작했던 마음 표현이 

대화가 오가면서 점차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는 불편한 상황이 되어 

냉랭하게 끝나고 말았다.


'딸들은 엄마랑 친구처럼 대화도 한다는데...'

처음으로 나도 딸이 있었다면 좋았겠다 생각도 들었다.


아들은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 틈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제대로 인사도 않고 짐가방을 끌고 가버리는 뒷모습을 보자니

또 울컥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들이란 원래 그런 존재가 아니었던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오늘은 왜 그렇게도 섭섭했을까 되돌아본다.


어두운 날씨 때문이었을까?

이렇게 자꾸 짐을 싸며 세상으로 향하는 그의 길에 

엄마라는 존재가 설 자리가 없음이 실감 났기 때문일까?


순간 나도 어디론가 떠나버렸음 하는 마음이 차올랐다.

'아, 집에 가가 싫다!!! 이대로 부산까지 가 버릴까?...'

.

.

.

.

돌아오는 길,  나는 마음으로부터 몰려올지 모르는 모든 감정을 봉쇄시킨 채,

오로지 운전만 했다.

굳어버린 마음의 상태가 오히려 편안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진 길,  "서울"이라 쓰인 표지판을 따라 달리면서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

그렇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돌아갈 곳"

집이 싫어 뛰쳐나온다 한들, 몇 시간, 며칠을 헤매건 결국은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만약 돌아올 집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뛰쳐나오고 싶은 생각을 할 수나 있었을까?


섭섭해서 한없이 멀리 밀쳐 놓았던 아들에 대한 마음,

지금 당장 내 마음을 밀쳐놓아도 결국은 돌아올 것을 알았기에, 

밀쳐 버릴 수도 있었겠다 싶다. 


그 마음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이라면, 

감히 멀리 밀쳐놓을 생각조차 못했겠지.








결국 나를 지키는 것은  그닥 대단해 보이지도 않았던 익숙한 일상이었다.


요동치는 감정에 휘청이는 나를 붙들어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  

일상의 힘이란 그렇게 대단한 것이다.


순간의 일탈을 일삼아도 결국은  다시 "돌아갈 곳", 원래로 "돌아갈 마음"이 있다는 것.

마음 한 구석에선 이를 알고 있었기에 감히 나는 용기를 낼 수 있다. 


그렇게 일상은 내 삶의 "믿을 구석"이 된다.

하루하루를 정성스럽게 살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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