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y의 의미
"우리 육체는 그냥 껍데기야, 영혼이 살아있어야지"
독실한 신자인 친구는 늘 그렇듯, '영혼'의 찬미로 그녀의 에피소드를 마무리한다.
물론이다. 내 영혼, 정신의 고귀함이 중요하지...
그런데 나는 오늘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자칭 저혈압 환자? 인 나는 이렇게 우중충하고 검은 하늘이 계속되는 날이면,
고귀한 정신은 아웃사이더일 뿐, '몸'만이 주인공이 된다.
젊은 청춘, 눈부시게 건강했던 '몸'은 막상 내 관심이 되지 못했는데,
이제 그 몸이 조금씩 빛을 잃고 낡아져 가니 비로소 그것을 보기 시작한다.
몸의 의미
'몸'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들은 무엇일까?
아, 왜 첫 번째 떠 오르는 것이 하필 '가면'이라는 단어인지...
아마도 나는 내 속의 나약하고 부끄러운 것들을 몸을 통해 숨기며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으로 자신 없었지만 나는 자신감 있는 표정과 몸짓으로 내 주장이 관철되길 바랐다.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들키지 않으려 용기 있는 척, 의연한 척 행동했다.
아팠지만, 걱정하실 부모님 생각에 괜찮은 척 그냥 견뎠다.
내 욕심과 이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친절을 베풀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내 몸의 실체로 드러났다.
나는 그리움이 '마음'의 영역이라 생각했지만, 그리움은 '몸'의 영역이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고 싶은 날이면, 나는 이 사실을 확인한다.
할머니가 그리워 마음이 온통 눈물로 차오를 때 나는 할머니의 크고 따뜻한 손이 만지고 싶고,
어린아이 같았던 그 웃음소리를 다시 듣고 싶고,
분 냄새나던 그 품에 미치도록 안기도 싶어 진다.
나는 뻣 속 깊이 할머니의 몸이 그립다.
그 손을 한 번이라도 다시 잡아볼 수 있다면,
작고 작아진 할머니의 그 몸을 다시 한번이라도 안아볼 수 있다면...
마음으로 할머니를 느끼는 것은 몸을 만질 수 없기에 대신하는 위안일 뿐이다.
몸은 현재이다.
마음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있지만, 몸은 오직 현재에만 있다.
그것은 내가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바로 '몸'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몸'은 전두엽과 호르몬, 수억 개의 신경과 혈액 등을 통해 마음마저 조종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몸은 '애매모호함' 따위는 없다.
그러니 오늘 하루,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기로 결심했다면,
그런 마음못지않게 '몸'을 존중해야 한다.
진리를 깨닫는 마음, 숭고한 소명의식, 고귀한 인류애...
우리는 위대한 정신의 작용을 말할 때, 실천이 중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 실천의 주체는 놀랍게도 '몸'이다.
아무리 대단해도 현실에서 부화되지 못하고 마음속에 갇혀있는 정신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정신이 위대해지는 것은 그것이 "실천"될 때이다.
독서만 하면 뭐 해? 글감만 쌓아두면 뭐 해? 머릿속에 만리장성을 쌓으며 뭐 해?
실천해라,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그 외침은 더 이상 마음의 몫이 아니다.
'몸'의 작용을 통해 가능하다.
'죽음'의 선고는 오직 '몸'을 통해 이루어진다.
정신력이 사라진 식물인간이라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이다.
'죽은 거나 다름없다'라는 말이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죽음'은 오직 '몸'의 멈춤을 통해서만 선고된다.
나의 죽음을 인정할 수 있는 대상은 내 정신이 아니라 내 '몸'인 것이다.
굳이 '정신'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몸', '육체'는 이렇게 때로는 우리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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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좋은 사람을 가까이하려 하고,
필사며 독서록, 메모 등에 열과 성을 다하고,
명상, 기도, 마음 다스리는 활동이라면 귀를 쫑긋 세우면서
정신과 영혼의 영역은 귀하게, 값비싼 물건 다루듯 했다.
반면, 내 몸에 대해서는 먹기 싫으면 안 먹고, 먹고 싶을 때나 대충 먹고,
건강식은 싫고, 달콤, 매콤, 감칠맛 나는 MSG에 방긋하고,
운동은 시간 없어 못하고, 날씨가 안 좋아 못하고,
무릎 아플까 봐(진짜 아픈 거 아님) 계단 오르기도 하면 안 되겠고...
나는 왜 내 몸을 정신이나 마음의 작용보다 소홀히 생각해 왔던 것일까?
'껍데기'라는 표현으로 마치 벗어던져버리고 말 것이란 평가절하를 서슴지 않았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더 중요하게 생각지는 못해도
최소한 동등한 대 잡은 해 줬어야 하는가 아니었나 말이다.
그간 조금은 소홀히, 때로는 어줍짢은 철학적 사유에 빗대어 하찮게도 생각했던
'몸'에 대한 반성문을 써 본다.
일단 몸에 대해 '껍데기'라 칭하는 말부터 금하겠다!!!
아, 100세 인생.
앞으로 50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데, 어쩌면 60년을 더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데(120세 시대라니!!), 이 부담스러운 시대, 내 몸에 대한 관심과 투자에 더 과감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