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넘쳤건만,
재능 있는 사람을 보면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전혜린, 박완서, 백건우, 조성진, 헤르만헤세, 빈센트 고흐, 파이만...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과는 별도로
재능 있는(gifted) 이들에게서 빛나고 있는 에너지가 경이롭기만 하다.
그들이 가진 에너지는 '열정'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도 빛난다.
그야말로 별이다, 스스로 빛을 내는.
그런데 이번 올림픽에서 본 한 장의 사진은,
이런 재능에 대한 내 각별한 사랑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특별했다.
분명 올림픽에 출전한 양궁 선수인데, 그저 우리 아들이 농구하러 나갈 때나 입을 법한 티셔츠를 걸쳐 입은 느낌이다.
아프리카 '차드'라는 국가의 양궁 선수라고 한다.
활쏘기가 너무 좋아 혼자 독학으로 양궁을 배우며 올림픽 선수로까지 나오게 되었지만,
지금껏 그를 지원해 줄 스폰서조차 갖지 못한 선수라는 소개를 들었다.
19살 때부터 혼자 양궁을 독학하면서 36살에야 올림픽 선수의 꿈을 이뤄 출전한 선수.
오히려 올림픽에서는 보기 드문 1점짜리 과녁을 맞혔을 정도라니 그는 '재능'과도 멀어 보인다.
장비도 코칭도 없이, 주목할 만한 재능도 부족했건만,
17년간 이 외로운 싸움을 멈추지 않게 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이틀이라도 활을 쏘지 않으면 한 달처럼 느껴질 정도로
양궁은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그 힘은 "열정".....
이라고???
그를 보며 나는 오늘만큼은 "열정"이 대단하다 싶지가 않다.
'나는 과연 열정이 부족했는가?'
아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차고 넘쳤다.
그런데 그 열정이 내 역사를 바꾸지 못한 이유는.
17년의 세월이 없기 때문이다.
"열정을 가지는 것,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
대체 그것이 뭣이 중요한데?"
오늘만큼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부끄러운 대답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내 열정은 아마도 발아는 했을지 모르겠다.
싹도 틔웠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길가에 심은 모든 풀과 나무가 어른 개체로 자라지는 못하듯이
성장을 지속하지 못했다는 것이 나의 부끄러움이다.
내 열정이 지속된 기간은 얼마였을까?
오늘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질문이다.
10년? 어림도 없다.
10년째 열정을 지속하고 있는 일을 나는 찾을 수가 없다.
5년, 아니 3년이라도, 차드의 양궁선수처럼 "이틀만 하지 않아도 허전할 만큼" 지속된 열정이 있었는가?
지금은 있는가?
답을 알기에 더 부끄러워지는 오늘이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열정 타령은 그만하자!
내가 부끄러운 것은 열정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