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
인문학자 배철현 교수와의 첫 만남은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습니다. 저는 종종 오프라인 서점에서 아이쇼핑을 하고는 하는데, 여러 책들을 두루 살펴보다 내용이 마음에 드는 책들은 나중에 한번 읽어보겠다는 마음으로 표지를 사진으로 찍어두고는 합니다. 그렇게 모아둔 위시리스트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클라우드 사진집 한 켠에 자리를 차지하며 잊혀져갔지요. 이 책, <심연>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중 배철현 교수와의 두번째 만남이 찾아옵니다. 당시 구독하던 경제주간지 인문학 섹션에서였습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니 배철현 교수의 인문학적 해석의 탁월함과 내가 몰랐던 지식의 세계를 확장시켜 준다는 것에 매료되었습니다. 좀 더 저자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탐색을 하던 중 앞서 위시리스트에 넣어놨던 책의 저자가 바로 이 배철현 교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이 리뷰를 남기게 된 강력한 동기가 되었죠.
이 <심연> 이라는 책은 배철현 교수의 4부작 '심연-수련-정적-승화' 중 첫 번째 타이틀입니다. 심연이란 무엇이고, 왜 우리가 심연과 마주해야 하는지, 이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안내해주는 가이드 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친절하게 실천방법까지 설명해주는 책은 아닙니다. 저자는 각 글의 주제인 화두를 짤막하게 던져주고 우리들로 하여금 스스로 돌이켜보게 만드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찰스 디킨스가 쓴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 영감이 된 듯한 착각에 잠깁니다. 오이디푸스,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서사, 길가메쉬 같은 메소포타미아 서사부터 팝스타 레이디가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례를 제시하며 우리 자신의 현재를 고찰해보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각 화두별 글의 분량은 10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읽거나 심란하여 잠이 오지 않는 고요한 새벽녘, 아침을 일깨우기 전에 읽기 좋은 글들입니다. 문체는 아무래도 학자 출신의 저자가 쓴 글이기에 다소 현학적으로 읽힐 수 있으나 난해한 수준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중지향적이죠. 이를 테면, 소위 '먹물 냄새'가 나긴 나는데 이는 벼루에 먹을 갈 때 나는 은은하면서도 기분 좋은 묵향입니다. 이렇게 비유하다 보니 전반적인 책의 Tone & Manner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네요.
제가 생각하는 이 책의 미덕은, 앞서 언급한 '화두'를 던져준다는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본적으로 알고 있던 통념을 뒤집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사유'라는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서술합니다.
'사유'란 내 손에 쥐어져 있는 정과 망치를 통해 어제까지 내가 알게 모르게 습득한 구태의연함을 쪼아버리는 작업이다. 결국, '사유'란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삶의 터전을 극락이라 여기며 매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응시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장소와 이 시간이 나의 사유 대상이며, 그것을 나를 위한 천국으로 만들고자 결심할 때 신은 우리에게 미소를 선물한다.
위와 같이 주제에 대하여 저자 나름의 고민을 통한 본질적 정의와 그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례 제시를 통해서 우리를 설득하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통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 이 책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책은 다양한 고사와 이야깃거리들을 함유한 영양가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지식을 다시 재확인시켜주거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반가운 일화들을 다시 일깨워줍니다.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들을 습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옵니다. 여러분이 열린 자세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본질로 돌아가서, '심연'이란 무엇이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저는 다음과 같이 내어놓고자 합니다.
이 책은 자신의 가장 본질적이며 어두운 근원인 심연으로 내려가 자신의 두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은 변화에 취약한 존재입니다. 본성이라는 '항상성'에 근거해 자기자신이 구축한 안전한 환경에 안주하고자 하는 고질적인 습성을 지녔죠. 이러한 본성이라는 저항선을 넘어서서 우리 스스로를 변화로 이끌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한 번 1년전 이맘때로 돌이켜 봅시다. 그때 새로이 다짐했던 것들을 지금 이 시점에 얼마나 달성하였나요? 애초에 목표로 두었던 일들을 모두 달성하였다면 기립박수 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우리들로서는 좀처럼 잘 되지 않는 일들이죠.
저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용기는 자기 자신의 두려움의 근원이 무엇인지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은 어떤 대상에 대해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에 기인합니다. 이에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편협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으로부터 탈출해 다른 여러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핵심이다. 우리는 껍데기를 깨고 제3의 눈을 통해 객관적이면서도 동시에 주관적으로 자신의 편견을 관찰해야 한다. 힘들더라도 이 낯설고 불편한 시공간으로 진입해 그 안에서 견디는 노력이 교육이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를 자기답게 만드는 여정의 첫걸음이다.
심연을 통해 자기 자신의 근원적 두려움과 본질적 실체를 마주하고 자신의 밑천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여정은 열정을 바탕으로 시작해야 하지만, 때때로 불안하고 취약해질 수 있는 이 과정을 인내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여 자신의 민낯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때때로 이 과정은 고통을 수반할 것입니다. 자신의 찌질함과 아둔함, 추악함과 마주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여정을 겪지 않는다면 인간이라는 본질적 개체로서의 궁극적 변화는 이끌어 낼 수 없다고 봅니다. 그저 보통의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에 순응하며 안주할 뿐이죠. 따라서 우리는 선택해야만 합니다. 저 거친 광야로 나설 것인가, 아니면 그저 지금처럼 따스한 이불 속에 틀어박혀 있을 것인가를 말입니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위대한 개인'이라는 개념을 꺼내듭니다. 그는 이 위대한 개인을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위대한 개인은 매순간 자신을 독수리의 눈으로 관찰하고, 자신이 미래에 이루어야 할 임무를 위해, 지금 이순간 자신의 혼과 영을 다해 최선의 경주를 하는 사람이다. 심연이 가져다준 자신의 고유한 임무가 그 사람의 호흡이며 몸가짐이다. 그 임무에 지속적으로 몰입되었을 때, 그 사람만의 숭고한 인격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위대한 개인은 배움을 통해 매일매일 위대하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배움이란 자신이 안주하고 있는 시공간에서 탈출해 자신에게 유일하고 진실한 자아를 발견하고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기꺼이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진실한 자아'를 발견하는 장소가 바로 '심연'이다.
결국, 저자는 '위대한 개인'이 탄생하기 위한 시발점으로서 '심연'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 심연이라는 곳은 스스로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단지 목마른 자에게 물이 있는 근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을 뿐입니다. 심연에서 길어 올린 자신만의 정수(Essence)를 어떻게 발견하고 정리하고 실천할 것인가의 문제는 오직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닌 두려움의 근원을 파악했고, 그것으로부터 용기를 얻었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그 깨달음을 직접 실천하는 일일 것입니다.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 현재 방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 새롭게 자신을 리부트하고 일깨우고 싶은 사람들, 내 안으로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부디 우리 모두 각자의 심연에서 변화를 위한 단초를 발견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