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울(Soul)> Spoiler Alert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음악, 저 너머의 이야기

by 책거미

결국에 못참고 오늘에서야 극장에서 관람하고 왔습니다. 디즈니와 픽사가 낳은 따끈따끈한 신작 애니메이션 <소울(Soul)> 이야기입니다. 한동안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우려로 최대한 극장 방문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결국에 못참고 저질러 버렸습니다. 픽사의 손에서 탄생한 째즈 애니메이션이라니 한 사람의 음악애호가로서 참을 수 없더군요. 설 연휴라는 점도 한 몫 거든 것 같기도 합니다.


우선, 본편 시작에 앞서 픽사의 Short Film Project '스파크쇼트(SparkShorts)'의 산물인 <Burrow>가 관객들을 먼저 반겨줍니다. 오프닝부터 귀여운 것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저의 취향을 저격해 버렸습니다. 약 6분간의 훈훈한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관객들의 가슴을 워밍업 시킨 후에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전편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yflixerhd.ru/watch-movie/burrow-66614.3994550


영화 <소울>의 예고편을 처음 접했을 때, 이 영화는 꼭 극장에서 관람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무래도 음악을 주제로 담은 영화이기도 하고, 극장 음향의 사운드 스케이프가 안방극장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죠. 게다가 픽사 애니메이션 사상 첫 흑인 주인공이라는 점, 그 배역을 맡은 성우가 음악과 연기를 넘나드는 배우 제이미 폭스라는 점 역시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든 충분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서술되는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아직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은 살포시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pixar-soul-shopdisney.jpeg 이미지 출처: https://whatsondisneyplus.com/new-pixars-soul-t-shirts-out-now/


이 영화는 제목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듯이 흑인음악 장르의 한 갈래인 '소울(Soul)'과 말 그대로의 '영혼(Soul)'을 다루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중의적인 메타포가 담겨 있는 제목이죠. 그렇기 때문에 한글 자막으로만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영어 원문 대사들이 담아낸 함축적인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풍부하게 영화를 감상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죠. 영미권 문화와 영어에 친숙한 관객들이라면 제가 지금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잘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사회문화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어 있다면 영화를 더 밀도 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플롯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찾아다니던 째즈 피아니스트 '조 가드너(애칭 미스터.G)'라는 인물이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이름을 날릴 기회를 잡은 순간, 우연한 사고로 인해 저승으로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 같지 않나요? 픽사 스튜디오의 전작 <인사이드 아웃>과 <코코>를 제작한 팀이 바로 이 <소울> 제작팀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전작들의 그림자가 이야기를 따라다니는 것을 느꼈습니다.


Soul_Courtesy of disney(Variety).jpg 이미지 출처: https://variety.com/2020/film/reviews/soul-review-pixar-disney-1234843312/


주인공 조(Joe)는 영혼들이 다시 지구로 회귀할 때까지 이들을 보살피고 양육하는 저승 '유 세미나(You Seminar)'와 조우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곳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관리자들인 '제리(Jerry)'와 '테리(Terry)', 사고뭉치로 악명높은 영혼 '22'를 만나게 되죠. 조는 자신에게 찾아온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 없기에 다시 지구로 귀환하고자 하고, 이를 위해 이 작은 악동 '22'의 멘토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여기서 맺어진 이 둘의 '멘토-멘티(Mentor-Mentee)' 관계가 이 영화의 극을 이끌어가는 핵심 장치이자 매개체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극의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갈등관계이자 이 영화가 담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입니다.


제가 해석한 바는 이렇습니다. 멘토-멘티 관계는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가르침 전수와 그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이 아니라, 두 객체 간의 지속적인 상호의견 교류를 통해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고 이러한 길을 통해 해답을 찾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읽은 <심연>이라는 책에서도 이러한 멘토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기에 잠시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스승은 그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나를 촉구하는 존재다. 인격적으로 완벽한 존재이기보다 나보다 앞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도반(道伴)이자 선각자다. 서양에서는 스승을 '멘토(Mentor)'라고 말한다. 직역하면 '멘토'는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자신 본연의 의무를 성찰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진정한 스승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 그리고 구태의연함에 안주하는 이에게 멘토는 찾아오지 않는다. 광활한 바다에 몸을 싣고 인생의 항해를 떠날 때 멘토는 슬며시 찾아와 나의 눈이 되어주고 귀가 되어준다. 인생의 최상의 멘토는 나 자신이다.


멘토는 현실 감각을 망각하게 하는 선생이 아니다. 멘토는 즐겨 읽는 양서를 매개로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엉뚱하고 고유한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동지가 되는 인생의 동반자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위의 구절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함축적인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극중 조는 22와의 멘토링 과정에서 진정성 있는 멘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빨리 22의 적성(Spark)을 찾아주어 지구로 회귀할 때 자신 역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혔을 뿐입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그러한 과정이 과장과 위트를 섞어 유쾌하게 그려지죠. 하지만 본격적인 멘토-멘티의 관계가 싹트는 것은 또 다른 사고를 겪고 난 이후입니다.


어찌어찌 지구로 귀환한 조와 22. 그런데 서로의 영혼이 엉뚱한 몸에 자리잡고 말게 됩니다. 조는 'Mr.Mittens'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 몸속으로, 22는 넋이 나가 있던 조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이 사고로 인한 갈등 수습과정에서 멘토링은 급진전되게 됩니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대목은 이렇게 몸이 바뀌는 설정이 자신 스스로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만든 영화적 장치로서 활용되었다는 점입니다(개인적으로 다소 진부한 클리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을 잘 다루기만 한다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픽사는 이것을 능숙하게 해냅니다). 특히 주인공 조의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말입니다.


이 영화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자신을 '타자화(Putting oneself in someone's shoes)'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러한 영화적 장치로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극 중에서도 조의 가족 및 일상적인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22는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을 깨달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를 곁에서 지켜 본 조는 자신의 삶을 다시 돌이켜보게 되죠. 스스로가 진정으로 갈구하는 삶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무엇인지 고찰하게 되고, 관객은 그러한 조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됩니다. 저는 픽사의 전매특허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능숙한 솜씨로 관객을 스크린으로 끌어당겨 매료시키는 것 말이죠.


g_soul_productionstills05_18976_9546c377 (1).jpeg 이미지 출처: https://www.disney.com.au/movies/pixar-soul


우여곡절 끝에 결국 조는 다시 자신의 몸을 되찾고, 가까스로 도로시아 윌리엄스(Dorothea Williams)의 째즈 쿼텟 멤버로 들어가 최상의 연주를 보여줍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뮤지션으로서 가족과 친구들 모두에게 인정받는 순간의 기쁨도 잠시. 그렇게 동경하던 꿈을 이루고 나니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현실의 감각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멘티인 22가 남겨 놓고 떠났던 것들을 다시 하나씩 떠올리면서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기 위한 여정을 떠납니다. 멘토-멘티 관계의 궁극적인 회복을 위한 실마리와 함께 말이죠. 그 결말의 감동은 극장에서 직접 느껴보시거나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au_homepage_soul_hero_m2_e90eaefa.jpeg 이미지 출처: https://www.disney.com.au/movies/pixar-soul?


마무리에 앞서, 이 영화가 '음악'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기에 잠시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평소 째즈를 즐겨 듣는 관람객이라면 영화를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고, 설령 잘 모르는 초심자라 하더라도 째즈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수준의 연주를 들려줍니다. 특히 극적인 장면전환에서 사용된 음악의 역할이 지대합니다. 엔딩스탭롤에서야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영화의 OST를 맡은 인물이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장인인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접하고 나니, 영화 초반에서 차원이동시 사용된 전자음이 이질감 없이 극과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이 납득이 가더군요. 이 양반이 째즈에 조예가 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참고로 이번 기회에 째즈에 관심을 둔 분들은 남무성 작가가 쓴 <Jazz It Up!> 이라는 만화를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출간된지 좀 된 책이긴 하지만 째즈의 세계로 입문하기 위한 마중물 역할은 충분히 한다고 봅니다. 이름 날린 째즈 뮤지션들 중에 왜 유독 괴짜 아니면 인성파탄자가 많은지 잘 알 수 있는 책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애니메이션 역시 영화의 한 장르라는 틀에서 바라볼 때 카메라 무브먼트나 샷의 구성 및 트랜지션 같은 영화적 기법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익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음악과 씬의 구성이 거의 천의무봉(Seamless) 수준으로 이어져 물 흐르듯이 진행됩니다. 특히, 실사로는 불가능한 애니메이션 만의 독특한 기법 표현을 눈여겨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Youtube에도 이러한 애니메이션 기법에 대한 Breakdown 영상들이 올라와 있을 것으로 보지만 가급적 스스로의 눈으로 발견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영화 감상의 본질적인 재미 측면에서 말입니다.


쓰다가 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져 버렸네요. 이제 마무리 지을 시간입니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간단명료합니다.


Find your Spark, and never let it go


제작진들은 이 단순한 메시지를 픽사만의 터치와 다양한 변주를 통해 관객들의 마음속에 전달합니다. 다소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물음을 관객들에게 던지는 듯하면서도 스토리를 통해 그에 대한 해답을 내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말은 일종의 열린 결말로 마무리 되죠. 주인공 조가 최후에 어떠한 인생경로를 선택했는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채로 영화가 마무리 됩니다. 관객 스스로가 결말에 개입할 여지를 남긴 셈입니다.


Soul.jpeg


저는 단순히 픽사가 이룩한 기술적, 내러티브적 성취를 넘어 관객들에게 본질적인 물음을 던졌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철학적 사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오락 영화입니다. 부디 여러분이 이 영화가 극장에서 막이 내리기 전에 관람하기를 추천드리며 이 리뷰를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긴 글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에는 보다 더 간결한 리뷰로 찾아뵙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심연(深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