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육아 이야기
육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단했다. 쉽지 않게 가진 아이라 좋은 것만 먹고 인형 바느질하며 태교도 했는데 막상 태어난 아이는 잠을 푹 자지 않는 예민한 아이였다.
조리를 도와주신 이모님은 내가 태교한다고 부산스럽게 움직여서 그렇다고 했다.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부모교육을 다니고, 인형을 만들고를 하기 보다, 누워서 잠이나 자지 그랬냐고 애가 잠을 안잔다고 했다.
좋은 이모님을 만나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아이를 키우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나의 꿈은 부질없이 바스라졌다.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도 체력도 없었다.
잘 때 가슴 위에 올려두고 앉아서 자길 8개월.. 잠이 모자르니 좀비가 되어 돌아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백일의 기적은 없었고, 돌이 지나면 나아지려나 했지만 여전히 한시간 마다 한번씩 깼다.
잠 자는걸 싫어하는 건지 무서워하는 건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시기였다. 잘 자고 일어나서 서럽게 우는 아이였어서 옆에 있어줘야했다. 애착 신체인 귀를 내어주고 4살까지 버텼다.
그 시기의 나는 촉감 놀이북을 잡고 살았다. 책과 아주 멀어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대상이 유아인 글밥 없는 그림책에 만지는 책이 유일했다는 차이만 있었다.
아이를 무릎위에 앉히고 읽어주는 그림책도 재미있었다. 그렇게 읽어 준 덕인지 막 말을 시작한 아이가 그림을 보고 의성어를 말하며 책장을 넘기고 엄마한테 들어보라며 자기 혼자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만큼 보람도 있었고, 나의 삶의 목적이 육아로 굳어지게 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유독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던 아이였다.
아이가 어린 시절을 후회없이 최선을 다했다. 집에서 해줄 수 있는 모든 놀이는 다 해준것같다.
커다란 박스가 생기면 배를 만들고 돗대를 달고 낚시대를 만들어 낚시를 했다. 거실은 바다가 되었다.
빨래를 널고 나면 빨래바구니는 숨바꼭질 장소가 되었다. 여기있지요 놀이를 하며 까르르 웃는 아이는 사랑스러웠다.
물감 놀이를 하다하다 할게 없어서 밀가루를 풀어 거실을 뒹군 적이 있다. 밀가루와 물 섞어 놀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뒷정리가 얼마나 힘든지..
굳어진 밀가루가 뭉개진 거실 바닥을 닦으면서 울었다. 내가 다시는 몸놀이를 하나봐라 다짐했다. 그 다짐은 다음날이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는 다시 아이랑 주물락 거리며 반죽을 만들어 촉감 놀이를 하고 있었다.
산책을 다녀온 날이면 자연물 책을 읽고, 보고 온거 만들기를 했다. 어린이 뮤지컬이나 영화를 보고 오면 그 주인공이 등장하는 책을 읽어주고 캐릭터 만들기를 했다.
그래서 우리아이가 책을 아주 좋아할 줄 알았다.
그렇게 목이 터지게 책을 읽어주고 놀이를 해주었던 아이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지나가며 책을 멀리하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나의 로망은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