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은 언제나 연속으로 몰아친다.
아이가 5살이 되던 해, 나는 다시 내 꿈을 위해 준비를 시도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원에 가 있는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마침 동화책 합평 모임이 가까운 지역에서 있어서 참여를 했다.
그곳에는 논술학원 선생님도 있었고, 전공과 달리 동화를 쓰고 싶은 분도있었다. 나는 그때 한참 그림책을 보고 있어서 동화보다 그림책이 쓰고 싶다는 포부를 말하고 인사를 했다.
우리 아이보다 어린 아이들이 있어서 데리고 오신 분이 있었다. 다들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키우며 꿈을 키우고 있었다.
만약 그 모임에 계속 참여했다면 지금의 나는 다른 길을 걷고 있을까? 생각도 해본다. 그 모임에서 공모전에 당선된 동화 작가가 두명이나 있었다. 나는 그 모임을 몇번 참여하지 못했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매달 들어오던 수입이 불안정해졌다. 살아가면서 언제든 위기는 찾아온다. 그 시기가 모두 다를 뿐.. 그리고 그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냐가 다를 뿐.. 행복하고 편안한 삶만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때의 나는 아르바이트라도 하자고 생각을 했다. 모임에 나가는 것을 그만두고 할 일을 찾았다. 경력이 단절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내 전공을 살리기에 아이가 너무 어려 짧은 시간에 빨리 하고 올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마침 바리스타 학원에서 자격증 수업 시작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그날 바로 가서 등록을 했다. 열심히 배워서 아이가 유치원 가 있는 오전 시간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야지.. 생각했다.
한참을 배우고 시험을 앞두고 있는 어느날.. 각자 내린 커피를 마시며 수강생들과 함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로 결심했는지 이야기를 했다.
나는 배워서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나보다 나이가 어렸던 원장님은 불가능하다고 단박에 이야기를 했다.
이유는 첫번째, 커피숍 사장님들이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아르바이트로 쓰기 불편해 하고, 두번째로 시간이 자유로운 사람.. 아침 일찍 나오거나 마감까지 있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시험도 보기전에 초를 친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은 잘 봤고 내 손에는 바리스타 자격증이 하나 생겼지만 그것 뿐이었다.
그 사이 남편 회사가 조금 안정이 되었다. 나는 아르바이트 고민을 뒤로 미룰 수 있었다.
그렇지만, 힘든 일은 늘 함께 온다.
그 해 이제 막 40이 되었던 애정하던 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언니의 성품을 아껴서, 외가쪽 사촌오빠에게 소개시켜 주어 결혼을 했는데, 아이도 낳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버렸다.
나의 하늘 같던.. 언제나 든든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아빠의 암 진단은 그로부터 두달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