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과 새로운 시작

나도 별 수 없었다.

by 여울

내가 즐거웠고 좋아했던 일을 그만 둔 것은 결혼하고 나서였다. 결혼한 여자들이 말하던 시집살이를 나는 피해갈 줄 알았는데 나도 별수없었다.


과거가 달라지려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뀌어야한다. 과거를 그대로 답습한다면 그것이 나쁜 문화라 할지라도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나의 시댁은 과거를 답습하는 고리타분한 어른들이었고, 자기 오빠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며 집안의 실질적인 왕으로 살길 원했던 시누이었다.


나의 시집살이 이야기는 차후 따로 글을 쓸 기회가 있을것같다. 사랑과 전쟁 후속편을 찍을 정도의 분량은 될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제일 먼저 들은 이야기는 자녀이야기였다. 폐백을 할때 어느정도 분위기를 짐작하긴 했지만, 신행을 다녀오자마자 손주 타령을 들을 줄은 몰랐다.


명목은 좋은 꿈을 꾸었다는 거였다. 태몽을 꾸었다는 압박.. 우스웠다. 마치 내가 대를 이어 종손을 낳아주려고 결혼한 것으로 생각하나 싶었다.


나는 그저 소모품인가? 나를 압박하고 갉아먹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태몽 이야기는 수시로 달이 바뀔때마다 들었다.


결혼한 지 6개월쯤 지났을 무렵에는 내 몸이 차가워서 아기가 안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것은 며느리의 탓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는 아직 신혼을 보내기에도 서로를 알아가는데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결국 나는 시어머니의 손에 붙들려 한의원에 가서 진맥을 받게 되었다. 결과는 내 몸은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과 아이 생기는 것은 남자들의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을 시어머니 앞에서 당당히 공표할 수 있었다.


나는 이미 산부인과에서 아주 따뜻한 몸을 가지고 있고 굉장히 규칙적인, 안정된 상태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손발이 차다는 이유가 몸이 찬 이유는 될 수 없었다.


시부모님의 성화에 매달 산부인과를 다니면서 내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이것이 삶인가 싶었고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선택을 해야했다. 딸이 잘 사는것을 바라는 부모님이 계셨기에, 나의 선택은 두 가지의 길 중 하던 일을 그만두고 운동하면서 아이를 갖는 것에 전념하는 길이었다.


아직 결혼한 지 일년이 안되었던 시기였다. 내가 좋아하고 즐거웠던 그 일은 그렇게 중단되었다. 거의 멈추었다고 봐야 하는 시간을 그렇게 보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