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시작하다
처음부터 내 길이 분명하게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길을 찾지 못해 마음의 갈등이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
내가 길을 잃었다고 느꼈던 날, 미래가 보이지 않고 답답하고 두려웠다. 어느 길이 정답인가 길이 너무 많았고, 어느것도 내 길이 아닌듯 너무 좁고 가파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내 길은 끊어졌다. 짙은 안개 속에 갇혀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은 막혔고, 크고 넓은 회색빛 구름 속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무엇을 할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주저하는 순간이었다. 남들은 자기 길을 찾아 부지런히 가는데 나만 멈춰있는 기분이 들었다. 비교를 시작했을때, 내 삶이 더이상 숨쉬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이 들었다.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멈춰있는 내 삶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했다.
그때의 내가 제일 먼저 선택한 것은 글쓰기였다. 중.고등학생과 지속적으로 지낼 자신이 없다면, 그들의 기세에 밀릴것 같다면 대상을 바꾸고 시선을 달리해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초등학생들과 책을 읽고 글쓰기 하는것이 시작이었다. 여전히 가르치는 일은 적성에 맞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이 즐거웠다. 그림책을 읽어주고, 독후활동으로 일기를 쓰거나 편지를 썼다. 감상문을 쓰거나 기사를 쓰기도 했다. 활동은 다양했고 아이들의 눈빛은 예뻤다.
자신이 없지만 후회도 남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임용고시도 준비했다. 3월이 되면서 바로 노량진에서 인기있는 임용고시 선생님들의 강의를 신청했다. 해볼 수 있을때 시작해보자의 각오였다.
사방으로 길이 열려있기도, 또 사방이 막혀있게 느껴지기도 한 상태에서 내가 선택한 일은, 내가 잘 할수 있는 일과 내가 목표했던 일 두가지로 좁히고, 집중하는 거였다. 한가지 길을 찾아 몰입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여전히 질풍노도의 시기인 학생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없었고, 어떤 것도 확신이 없었다.
만약 지금의 나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것 같다. 나는 이미 많은 시간을 살아냈고, 그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이가 되어 오롯이 집중하며 시간을 보낼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한다.
모든것은 때가 있다. 그때의 내게 두가지를 같이 하는 선택이 필요했고, 그것이 최선이었듯이 지금의 내가 그 길을 다시 걷기에 한계가 있다. 가끔 지금이라도 더 늦기전에 임용고시를 다시 준비해보면 어떨까 상상을 해본다. 내 길이 아닌걸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건 힘들었다. 임용고시에만 몰입해서 시험을 준비해도 떨어지는데, 난 오전에 학원가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글쓰기를 가르치고 온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는 파김치가 되어 널부러졌다.
내 몸은 스트레스로 인해 위가 기능을 잃었고, 1년을 정말 치열하게 살아냈다.
당연한 결과로 임용고시는 떨어졌다.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무언가를 치열하게 준비해 본 경험이었다. 두가지를 동시에 완벽하게 할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의 경험은 이후 내가 살아가는 내내 큰 도움이 되었다. 일을 진행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내가 하던 일을 꾸준하게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할 수 있는것도 젊은 날의 내가 경험으로 습득하며 살아냈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쓰는것이 좋고, 가르치는것이 즐겁고, 그림책을 애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