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을 찾아가다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나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로 힘을 쏟게 되었다.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열정을 다해 도전했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의 미련이 남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6학년 까지의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했다. 아이들은 예뻤고 감사하게도 학부모님들도 좋아해주시고 많이 찾아 주셨다. 개인도 있고 그룹도 있었다. 때로는 야외 체험을 하고 글쓰기로 마무리하기도 했다.
글쓰기를 지도하는 것은 적성에 잘 맞았다. 그대로 쭉 해도 되었지만, 그 당시의 난 몇 년간 해 온 글쓰기 지도보다 다른 일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던 시기였다. 3,6,9가 변화가 오는 시기라는 말이 딱 맞았다.
난 3년차 글쓰기 선생님이었다. 변화에 대한 갈증으로 해 볼 수 있는 일을 알아보게 되었다. 그때 눈에 띈 것은 웹디자인 교육이었다. 사진을 찍거나 이미지를 가져다가 홍보 화면을 만들고 상품 설명 페이지를 디자인 하는 일이었다.
웹디자인을 배우는 것은 재미있었다. 나의 관심은 어릴때나 자라서나 크게 바뀌지 않고 비슷하게 흐르는 것 같다. 어쩌면 하지 못한 일에 대한 갈망이 이렇게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했다. 교육을 마치고 웹디자이너가 되어 작은 쇼핑몰에 취직했다.
첫번째 회사는 생필품을 파는 곳으로 칫솔, 살균기, 선풍기 같은 제품을 파는 곳이었다. 안마기도 있었다. 제조공장 옆에 붙어있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베개형 안마기를 원가에 사서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선물해 주기도 하고 좋은 점도 있었지만, 환경이 열악했다. 디자이너 경력이 없으니 어쩔수 없다 생각하며 1년을 다녔다.
두번째 쇼핑몰은 깨끗한 건물에 있는 오피스텔 사무실이었다. 그곳에서는 문구류를 팔았다. 독일 수입 문구류 였다. 그러나 내가 디자인 페이지를 만들고 주문을 체크하고 포장 배송까지 해야 했다. 한 사무실 안에 여러 파트가 있는데, 각자 담당 분야가 따로 있고 자기가 책임지고 있는 파트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는 구조였다.
세번째 회사는 의류를 파는 회사였다. 모델도 있고, 사진 촬영사도 있고, 웹디자이너도 몇명이 있었다. 바로 옆의 사무실에는 같은 회사의 배송,영업팀이 따로 있었다. 아래층에는 포장하고 발송하는 부서도 있어서 송장을 출력하고 배송을 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판매하는 의류를 제작하는 공장이 다른 곳에 있었던 제법 규모가 큰 쇼핑몰이었는데, 가끔 웹디자이너들이 새벽시장을 따라가야 했다.
새벽시장은 활기가 넘치고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공간이었다. 단지 내가 새벽형 인간이 아니라, 그 시간에 일어나 함께 시장을 돌아다니고 때로 촬영해서 디자인 페이지를 만들 의류를 등에 짊어지고 와야하는 것이 힘에 부쳤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직장은 없다. 좋은 일도 있고 재미있는 일도 있고, 힘든 점도 있고 스트레스 받는 상황도 있다. 하고 싶었던 일도 직접 그 일을 해보면 단점이 있고 어려움이 따른다. 그 어려움을 감당하고 나아갈 수 있느냐 아니냐가 관건이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나를 무너뜨리는 일은 나와 맞지 않는 일이었다.
마지막 쇼핑몰 회사를 그만두면서 팀장님과 이야기를 했었다. 10가지를 기준으로 6-7가지만 마음에 들고 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계속 다니라는 것이었다. 어디나 힘에 부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니 옳은 말이었다. 웹디자이너로서의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다른 쇼핑몰로 이동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해야할 것 같다고 했다.
제자리 걸음이었을까? 유턴을 한 것일까? 난 지금 디자인 일을 하지 않는다. 포토샵은 옛날 버전만 사용해서 지금 나와있는 최신판은 기능이 많이 바뀌어 사용하게 된다면 새롭게 배워야 할 상황이다. 기본적인 기능은 알지만 새로운 기능들은 사용하기 어려웠다. 그 날 이후로 새벽 시장을 가본 적도 없었다. 경험이 삶의 밑거름이 되는 것일까?
하지만 그 시간 역시 후회는 하지 않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흔하디 흔한 문장이지만, 그만큼 진리라는 생각도 든다. 해보지 않은 일은 어떤 일인지 알 수가 없기에 정말 나에게 맞는 분야인지 느껴볼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젊은 나이에 해볼수 있는 일들을 체험해 본다면 살아가면서 어떤 방법으로든, 어떤 상황에서든 사용하게 될 일도 생긴다.
나는 그 포토샵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 얼굴을 그림 속에 넣어서 책을 만들어 주었다. 공주옷을 좋아하던 아이에게 디즈니 공주 사진을 찍어주고 그 사진으로 아이가 주인공인 공주 동화책도 만들어주었다. 기존 동화책의 내용을 그대로 쓸 수는 없어서 그 내용을 토대로 내 입말로 글도 다시 써서 엄마가 제작해 준 '백설공주' 동화책을 우리 아이에게 선물로 줄 수 있었다. 아이가 공주가 되어 디즈니 동화책 주인공이 된 순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웹디자이너로 포토샵을 배우고, 쇼핑몰에 다녔던 그 시간은 이 한번의 과정으로 후회없이 충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