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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스톤 May 07. 2019

‘웃으며 싸우는 법’ 배워보실 분?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 저자 구정우 교수의 하루

아침 8시 기상. 오늘은 중앙일보와 인터뷰가 있는 날이다. 내 신간에 대한 첫 언론 인터뷰. 오후 2시인데, 뭔가 아침부터 마음이 바쁘다. 사실 어제 새벽까지 70명 학생들 보고서 채점을 끝내느라 강의 준비를 잘 못했다. 아뿔싸, ‘젠더’에 관한 강의구나! 좀 더 잘 준비해야, 요즘 젠더전쟁으로 지친 학생들에게 힐링을 줄 수 있을 텐데. 내 신간의 한 챕터도 ‘젠더전쟁’이 아니던가?      


사실, 어젯밤에 뉴스를 챙겨보느라 채점이 늘어진 탓도 있다. 공수처 설치·수사권 조정 ‘패스트트랙’ 상정.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고함을 지르며 으르렁대던 장면. ‘빠루’와 망치, 장도리가 등장했던 전날 밤에 비하면 기세가 꺾인 것 분명했다. 하지만 살벌함은 그대로다. 아니 극단적 정치투쟁은 이제부터인 것 같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피곤함이 몰려온다.      


연구실에 도착해서 곧장 강의 준비를 시작했다. 고요함도 잠시, 전화벨이 울린다. 중앙일보 기자다. 오후 인터뷰를 진행할 문화부 기자는 아니고, 법조팀 기자란다. 이렇게 물어왔다, 최근 유튜버가 서울지검 검사장에 대한 살인 위협을 했는데, 과연 표현의 자유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해에 있었던 김명수 대법원장 차량에 대한 화염병 투척 사건도 친절하게 상기시켜줬다. 


‘어떻게 답해야 할까?’ 신간에서 소개한 미국 대법원 판결이 떠올랐다. 한 성인잡지사가 유명한 개신교 목사를 근친상간자로 패러디한 광고의 위법성에 대한 판결이었다. 광고에서 목사는 입에 올리기도 거북한 패륜아로 묘사된다. 우리 같으면 분명 명예훼손인데, 미국 대법원은 8대 0 만장일치로 무죄를 선고했다. 


‘유튜버가 분명 선을 넘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성을 잃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 살해 의도가 있었는지는 면밀히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법기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크거든요….’ 공인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넓게 해석한 미국의 경우를 들며, 이렇게 의견을 밝혔다. 

전화를 끊고 좀 더 생각을 해본다.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은 맞지만, 너무 과한 건 아닐까? 내가 제안한 표현의 자유 보장은 어쩌면 ‘이기적 인권’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다시 ‘젠더’로 돌아왔다. 강의에서 뭘 부각시킬까? 미국 미투운동의 배경, 실재하는 ‘젠더권력’, 자신은 권력을 가진 ‘잠재적 가해자’가 결코 아니라고 항변하는 20대 남성의 입장, 급진적 페미니즘의 장단점 소개… 내 책에 소개된 내용과 교재의 내용이 잘 조화되는 듯했다. 다시 자신감이 생겼다. 오늘도 내 브랜드인 ‘열정적 교수’의 모습을 보여줘야지!     






오후 2시! 중앙일보 기자가 들어왔다. 사진 기자도 함께. 오랜만에 내 방에서 사진 셔터가 시원하게 울린다. 이래저래 포즈를 취하지만, 뭔가 어색하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얼굴표정, 손짓이 어색한 것은 괜찮아. 인터뷰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신 있게! 

1시간 반가량 인터뷰하는 동안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다행이다! 책을 쓰게 된 동기, ‘인권감수성’이란 개념, 극단적 대립의 일상화 속에서 ‘웃으며 싸우는 방법,’ 미래의 한국에서 중요하게 떠오를 인권 이슈… 큰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 한 덕에 주요 주제들이 한데 묶이는 기분이었다.      


이성이 움직일 공간을 열어주어야, 공감 능력도 커진다고 했다. 이때 비로소 ‘인권감수성’이 살아나고, 극단적 대립 속에 ‘완충지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인권의 상자’에 시급히 담아야 할 것으로 ‘노동권’을 주저 없이 꼽았다. 마침 ‘노동절’이어서였을까? 책에서 다룬 기업 갑질 문제, 노동자의 존엄성, 노조의 새로운 역할, 인권경영 등의 키워드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왔다. 출판사 대표의 페이스북에 손이 간다. 내 신간을 소개하는 맛깔난 글이다, 그런데, 이것 봐라. 책 만드는 데 무려 1년 3개월이 걸렸네! 그랬네, 1년이 넘게 걸렸네. 권 대표께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왜 더 짧게 걸렸다고 생각한 거지? 긍정적으로 보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쓴 것이다! 

다음번에 후속작을 한다면 꼭 시간을 단축하자! 그러려면 주제를 잘 잡아야 하는데… 음, 에필로그를 심화시켜 볼까? ‘AI의 인권감수성 키워주기?’ 아,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하자. 주말엔 꼭 교회를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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