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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스톤 Oct 29. 2019

낭만을 놓지 않는 현실에 대해

<밤에 일하고 낮에 쉽니다> 출간 후기

가끔 지금 만드는 책이 어떻게 읽는 사람의 손에 닿을지 상상하곤 한다. 서점 홈페이지가 픽해주거나, 친구가 읽어서 따라 사거나, 구독하는 인플루언서의 추천으로 펼쳐보거나. 


《밤에 일하고 낮에 쉽니다》의 원고를 만지면서는 서점을 천천히 돌아다니는 상상을 했다. 어느 곳이건 좋지만, 이왕이면 자주 가는 동네 서점이라면 더 좋겠다(읽으시는 분들 모두 지금 딱 떠오른 그곳으로 상상해주시라). 판매대 위를 게으르게 훑다가 어느 순간 한 곳에 딱, 시선이 멎는 거다. 뭐, 밤에 일하고 낮에 쉰다고? 개꿀 나 완전 야행성인데. 그렇게 펼쳐보면 어느 한 곳, 특히 촤라락 넘어가던 종이가 우연히 멈추는 곳에 눈이 멎기 마련이다. 몇 번 촤라락 촤라락 해봤는데, 이 부분에서 멈출 확률이 가장 높았다.   

 

세상에 ‘그냥’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좋다고 눙쳐버리는 것도, 결국은 수많은 이유가 더해져 나온 마음이다. 그래서 이유를 끝까지 찾아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를 가장 솔직하게 정의할 수 있는 순간도 찾아올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뭘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눈길이 멈추게 되는 대목이다. 이렇게 한번 눈길을 사로잡히고 나면 읽는 데 탄력이 붙는다. 다음은 호로록 넘어갈 줄만 알았던 대목에 어느 순간 훅 빠지는 단계다. 이왕 빠질 거, 이 대목은 어떨까.    


책바는 혼자 오는 손님 비중이 월등하게 높다. 나도 한 팀에 3명이 넘는 손님은 받지 않고 바에서 큰 매출을 담당하는 보틀 판매도 안 하면서 각자가 자신과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다. 손님들은 책바에서 읽고, 쓰고, 생각하며 자신만의 호사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편집 과정에서 이 대목에 이를 때마다, 책을 훑어보던 사람들이 슬쩍 웃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자신만의 호사스러운 시간.’ 


《밤에 일하고 낮에 쉽니다》는 그 시간을 즐기는 데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일과 삶, 고민과 시행착오에 대한 고민도 빼놓을 수 없지만 나는 읽을 때마다 ‘낭만을 놓지 않는 현실에 대한’ 고민이 깊게 남았다. 낭만, 호사, 좋아하는 것들. 결국 하나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놓을 수 없는 것들. 생존과 동떨어졌다며 밀려나기도 하지만, 고민하다 보면 이 시대의 생존에 무엇보다도 가까이 있는 것들. 그걸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만의 호사스러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해봐야 할 것 같은 시대다. 내 길에 확신을 주는 길잡이도 드물다. 화끈하게 헤매고 실패해보라는 말도 현실을 모르는 것 같기만 하다. 그러니 오늘은, 눈 딱 감고 이 책과 함께 편안한 자리에 앉아 조용히 나만의 호사스러운 시간 속으로 가라앉아보자고 권하고 싶다. 그 호사 속에서 뭘 건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책바에 처음 오면 다들 이런 바가 있는 줄 몰랐다며 말을 건네곤 한다. 
첫 마디는 보통 이렇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 생각을 하셨어요?"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매일 가고 싶은 바를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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