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올해 국민의 외로움 문제를 전담하는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었다. 그만큼 외로움은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는, 밀접하고도 방치할 수 없는 감정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선뜻 자신의 외로움을 꺼내놓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
<외로움을 씁니다>는 이러한 외로움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자기만의 관점으로 담백하게 풀어낸 에세이다. 저자의 개인적 외로움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외로움에 대한 독특한 시선 때문일까, 마치 외로움에 대한 유쾌한 백과사전을 읽는 느낌이다. 단순히 외로워서 이 책을 쓴 것 같지는 않은 느낌적 느낌과 외로움을 넘어선 저자의 다른 생각들이 궁금해 TMI 인터뷰를 진행해보았다.
1. 책을 읽다 보면 해외경험이 많아서인지 외로움에 대해 쓴 책이지만, 여행책 같은 느낌도 들어요. 책에 나오는 도시들은 총 몇 곳인지,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의 외로운 장면이 궁금합니다.
아, 첫 질문부터 정말 TMI로군요. 사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질문을 받고 세어봤거든요. 책에 언급한 도시들을 쭉 나열해보자면 서울, 양양, 강릉, 경주, 도쿄, 교토, 오사카, 후쿠오카, 요코하마, 가마쿠라, 홍콩, 상하이, 마카오, 파리, 마드리드, 그라스, 코펜하겐, 피렌체, 바르셀로나, 밀라노, 제노바, 부다페스트, 스톡홀름, 함부르크, 앤트워프, 로테르담, 빌바오, 알리칸테, 바젤, 리스본, 헬싱키, 포르토피노, 아비뇽, 그라나다, 브뤼셀, 발렌시아, 팔로알토, 벤쿠버, 뉴욕, 샌프란시스코니까, 아시아 13개 도시, 유럽 23개 도시, 북미 4개 도시, 총 40개 도시네요. 막상 세어보니 저도 놀랍네요. 이 도시들 중 아무래도 최근 몇 년 간 머물렀던 파리가 가장 외로운 도시로 제게 남아 있어요. 비오는 날 파리는 무척 외로운 도시가 되거든요. 특히 겨울 무렵에는 늘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 이 시기의 파리를 색으로 표현하라면 회색 느낌이에요. 그 이미지의 잔상이 제 기억에 남은 가장 외로운 이미지 같아요.
2. 영화나 책 이야기가 유독 많이 나옵니다. 영화에도 외로움이라는 필터를 적용해서 보는 편인가요?
개인적으로 가장 외로워 보이는 영화 속 캐릭터 세 명만 꼽는다면, 그 이유도 함께요.
첫 번째는 영화 <HER>의 남자 주인공 호아킨 피닉스. 그는 AI에게조차 버림받잖아요. 사실 AI라는 건 굉장히 개인화에 최적화된 기술인데, 그런 AI에게조차 버림받는다면 그 충격은 엄청날 거 같아요.
두 번째는 <색계>의 탕웨이. 당시의 중국은 정치적 상황으로 개인의 외로움은 용인되지 않던 시대적 분위기였죠. 그 배경 자체만으로 영화 보는 내내 외롭게 느껴졌어요.
마지막으로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빌 머레이예요. 할리우드 톱스타로 나오는 빌 머레이는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사람이지만 누구보다 외롭잖아요. 문제는 성공한 사람의 외로움은 타인에게 이해받기조차 어렵다는 점이죠. 그렇기에 빌 머레이에게는 그의 외로움을 이해해주는 스칼렛 요한슨이 소중했을 거예요.
3. 외로움에 대해 썼지만 외롭지 않은 책이기도 합니다. 외로움이라는 필터로 사회와 현상을 들여다보지만 거꾸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낱낱이 분석하는 글로도 읽히고요. 책에서 말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다른 단어로 바꾸어 말한다면 뭘까요.
전 외로움은 자기애와 맞닿아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외로움은 자기 자신의 감정에 예민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높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거든요.
4. 무언가를 마시면서 글을 쓴다고 했어요. 그래서일까요. 마실 것에 대한 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술이 땡깁니다. 혼자 외로울 때 마시면 좋을 술, 혼자 신나게(?) 마시면 좋을 술, 둘이 외로울 때 마시면 좋은 술, 마셔도 절대 외로워지지 않는 술을 각각 추천해주세요.
혼자 외로울 때는 내추럴 와인, 책에서 표현한 대로 고맥락(high context) 술이다 보니 맛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집중을 해야해요. 집중하는 과정에서 외로움이 잊혀지는 술이랄까요.
혼자 기분 좋게 마시기 좋은 술이라면, 음, 일반적으로 신날 때는 시원하고 라이트한 라거를 떠올리는데요, 제 경우엔 이상하게 버번 베이스의 올드패션드라는 칵테일을 마시게 되더라구요. 달달하면서도 약간은 묵직한 그 느낌이 혼자 신났을 때 너무 들뜨지 않도록 저를 잡아주는 듯해요.
둘이 외로울 때 마시면 좋은 술은 샴페인이죠. 일단 샴페인은 한번 따면 다 마셔야 하니까 혼자 마시기는 조금 부담스러운 술이거든요. 가격대는 조금 있지만 외로운 날은 조금 호사를 부려도 되잖아요. 원래 샴페인은 기쁜 날, 축하할 일이 있는 날 마시는게 정석인데, 전 반대로 기분이 다운되는 날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에요.
마셔도 절대 외로워지지 않는 술이라, 이건 무조건 리몬첼로! 남부 이탈리아 특산물인 리몬첼로는 레몬 담금주거든요. 달달한 맛과 색깔 때문에 가장 귀여운 술이라고 표현해요. 특히 필터링 되지 않아 레몬 알갱이가 들어 있는 리몬첼로는 한 번쯤 꼭 마셔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5. 아름다운 디저트 천국 같은 파리에서, 정작 한국빵을 먹지 못해 외로웠다는 대목이 기억에 남습니다. 서울에서는 지금 무얼 먹지 못할 때 가장 외로운가요?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에서 가장 그리운 건 파리의 감자탕이에요. 이유는 심플해요. 프랑스는 돼지고기 품질이 좋은데다가 감자탕에 사용되는 돼지고기 부위가 비인기 부위다보니 파리 한식당의 감자탕은 한국보다 훨씬 푸짐하게 나와요. 게다가 한식을 많이 먹지 못하는 환경에 있었으니 감자탕이 얼마나 맛있었겠어요. 특히 제 경우는 파리에 가서 처음 먹은 한식이 감자탕이었던 추억 보정 효과까지 있거든요. 지금 이 순간 서울에서 먹지 못해 외로운 파리의 음식은 웃프게도 파리 한식당의 감자탕입니다.
6.책에 많은 단문들이 실려 있는데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과 그 이유를 꼽는다면요?
p.85의 #외로움의쓸모 단문이요. 사실 그냥 제 생각들을 쭉 풀어낸 책이다 보니 가장 마음에 드는 단문 하나를 꼽는 건 조금 어렵긴 해요. 다만 #외로움의쓸모 단문은 제가 <외로움을 씁니다> 를 내게 된 이유(?)가 담긴 글이라 좀 더 애착이 가거든요. 흔히 외로움을 나약해서 느끼는 감정, 참아야 하는 감정, 혹은 비효율적인 불필요한 감정으로만 치부하는데, 저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도 ‘쓸모’가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가까워지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에 관해 잘 알게 되고, 그로 인해 덜 외로워지고, 심지어 마케팅이나 투자 아이디어와도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쓸모가 많은 감정이라 생각하거든요.
7. 책에서 가장 외로운 문장과 그 이유를 든다면요?
p.22 ‘직장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공간이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직장이잖아요. 그런 직장이라는 공간이 외롭다는 건 현대인의 삶이 본질적으로 외롭다는 걸 의미하지 않을까요?
8.<마케터의 여행법>에 이은 두 번째 책입니다. 첫 번째 책과 달리 이번 책을 쓰면서 특별히 어려웠던 점이 있나요?
책을 쓴다는 건 언제나 그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이번 책에서는 글에 묻어나는 외로움의 수위를 조절하는 게 힘들었어요. 순도 100%의 외로움이 아닌 1%의 외로움이잖아요. 그 외로움의 수위를 1%에 맞춰 쓰는 것도 쉽지 않았을뿐더러, 책을 낸 후 1%의 외로움이라는 생소한 감정을 잠재적 독자 분들에게 어필(?)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고 느낍니다. 각자 느끼는 외로움의 수위와 정의와 컬러가 이렇게 다양할 줄 몰랐거든요.
9. 책에 서울의 금요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너무 사소한 질문 같지만, 일주일 중에서 가장 외로운 요일은 언제인가요.
수요일이요. 이전 주말에 취한 휴식의 기운은 떨어졌고, 다음 주말이 오기까지는 너무 많이 남은 시점이라 외로워요. 책에서도 표현했듯이 외로움은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오는 마음의 감기 같은 감정이라 생각하거든요. 몸과 마음은 이어져 있기에 건강하고 체력이 좋을 때는 덜 외롭고, 반대로 피곤할 때는 좀 더 외로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게는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한 수요일, 특히 술 마신 다음 날 수요일 아침이 일주일 중 가장 외로운 순간이에요.
10. 저마다 느끼는 외로움이 다른 것처럼 다양한 리뷰가 많았는데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다면요?
제가 정의하는 1%의 외로움이란 ‘타인에게 털어놓아도 민망하지 않은 정도의 외로움’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쓴 외로움에 관한 글들이 외롭게 느껴지기보다는 재밌고 유쾌하다는 서평을 남겨주신 분들이 제법 많았어요. 저자 입장에서는 그런 공감이 반갑게 느껴져요. 제가 생각한 1%의 외로움의 톤을 이해해주시고 공감해주신 셈이니까요. 그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어느 독자 분이 저자의 건조한 외로움에 대한 접근이 <외로움을 씁니다>보다 <외로움을 팝니다> 쪽에 더 어울린다고 쓴 리뷰예요. 저는 마케팅과 투자라는 프레임으로 사고하는 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소비나 투자기회와 연결시킨 대목이 많았거든요. 너무 정확한 지적이라 웃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었어요. 뭐, 지금은 이 책을 잘 팔고 싶습니다. 일단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