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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스톤 Jun 23. 2020

가장 외로운 여행지

리스본의 에그타르트와 문어 통조림에 대하여 

에그타르트를 사랑한다. 사랑하기에 아무 에그타르트나 먹을 수없다. 원래 사랑하면 다 그런 거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에그타르트를 심사숙고해서 고르는 것이야말로, 에그타르트에 대한 나의 자세이자 예의다. 에그타르트를 언제부터 좋아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사랑에 빠진 순간만큼은 정확히 말할 수 있다. 그 전엔 시야에 들어온 적 없던 작고 동그란 디저트의 존재감을 인지한것은 홍콩 KFC에서 파는 가성비 뛰어난 에그타르트를 먹은 후부터였다.에그타르트는 포르투갈 음식이고,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으니, 마카오에 이웃해 있는 홍콩의 에그타르트가 맛있다는 사실은 맥락에 부합한다. 그러나 맛있다는 이유만으로 에그타르트와사랑에 빠진 건 아니다. 예쁘고 잘생긴 이성이라 해서 무조건 반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타인에게 끌린다. 


에그타르트라는 음식은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나와 왠지닮아 보였다. 때로는 식후에 먹는 달달한 디저트였다가 때로는 가벼운 한 끼 식사가 되는 빵 같은 에그타르트에서 여행자도 아니면서프랑스 사회에 완전히 편입되지도 않은 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보였다. 복잡미묘하게 설명했지만 결국 자기애에 관한 이야기다.난 나를 좋아하지만 시기에 따라 편차는 있다. 누군가를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할 때가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할 때도 있다. 한동안 외로웠고, 그에 비례해 자존감은 떨어졌으며, 그랬기에 자기애를 보충할 필요가 있었다. 나의 리스본 여행은그렇게 시작되었다.



리스본을 여행해야 하는 이유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하지만, 당시 내게 리스본은 더도 덜도 아닌, 에그타르트의 성지 ‘파스테이스 데 벨렘Pasteis de Belem’이 존재하는 도시였다. 에그타르트의 탄생지에서 세계 최고의 에그타르트를 마주하는 건 나에 대한 애정을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여정이었다. 즉 파스테이스 데 벨렘이 나의 산티아고이자 예루살렘이었던 셈이다.모든 성지가 그러하듯 파스테이스 데 벨렘 역시 언제나 순례자들로 붐빈다. 엄청나게 큰 매장인데도 한참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성지에 발을 들일 수 있는 시각은 아침 8시. 나는 당연히 아침8시에 도착할 계획을 세웠다. 내가 머물던 구시가지에서 트렘으로 30분이면 갈 수 있었지만 그 경로를 버리고 한 시간 넘게 해안가를 따라 걷는 고행의 길(?)을 택했다. 나를 마주하기 전(에그타르트를먹기 전) 최선을 다해 이왕이면 가장 배고픈 상태에서 가장 맛있게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걷다 지쳐 에그타르트에 대한 호기심이 식어갈 때쯤 어디선가 갓 구운 빵과 계란 특유의 고소한 향, 달달한시나몬 파우더 향이 흘러나와 성지에 거의 도착했음을 알렸다.그런데 웬일인지 오픈 전부터 줄을 선다던 매장 앞에 사람들이보이지 않았다. 마침 그날은 월요일이었고 비마저 내린 탓인지 신도들은 오전 9시가 되어서야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픈 시간에 맞춰 우아하게 에그타르트를 먹겠다던 나의 계획과 달리 뭔가 쓸쓸한 분위기가 되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는 그렇게 갓구운, 바삭바삭한, 비릿하지 않은, 가장 완벽한 상태의 나 자신과조우했다. 에스프레소 한잔에 무려 여섯 개나 되는 에그타르트를단숨에 먹어치웠다. 10유로의 행복은 완벽했다. 드넓은 수도원 홀같은 곳에서 인생의 마지막이라 해도 좋을 에그타르트를 놓고 감상에 빠졌다. ‘앞으로 다시는 먹을 수 없을 거야. 심지어 이 가게에 다시 온다 해도.’ 그리고 이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훌륭한 에그타르트를 먹는 데는 성공했지만, 내 기억 속 리스본은 유럽에서 가장 외로운 도시로 남아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리스본을 여행할 당시 내가 꽤 외로웠기 때문이다. 리스본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 있겠지만 호카곶이 위치한 유럽대륙의 끝, 게다가 과거에는 육지의 끝이자 콜럼버스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을 떠나보낸 항구였고 쓸쓸한 음률의 음악 파두Fado의 탄생지인 리스본은 사실 외로운 정서로 가득한 도시다. 그렇게 생각하면 리스본을 외로운 도시라 칭해도 크게 미안할 건 없어 보인다. 애초 리스본을 여행지로 택한 것도 외로움이 발단이 되었으니까. 여느 여행과 달리 리스본에서 소소한 사치를 꽤 즐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치는(특히 여행자의 경우) 외로움을 달래는 효과적인 장치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에 무작정 들어가 이런저런 메뉴를 시켜보기, 비뉴베르드 같은 포르투갈 와인을 잔으로 주문해 연달아 맛보기,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 바에서 최고급 시가인 코이바Cohiba 한 대 피워보기, 포르투갈 식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를 즐기기 위해 영국인들이 운영하는 부티크 호텔에 하루 머물기 등, 외로운 리스본에서 나의 자잘한 사치 행각은 계속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리스본은 작은 사치를 즐기기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였다. 물가는 저렴하지만 좋은 취향의 사치재를 찾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시작은 영국인들 덕분이었다. 영국과 프랑스 간의 전쟁으로 당시 프랑스의 전략 품목이었던 와인 수출이 금지되자 영국인들은 포르투갈로 넘어가 직접 와인을 생산해 영국으로 수출했다. 영국과 포르투갈 사이의 저관세 협약도 한몫했다. 따뜻한 날씨, 저렴한 물가, 친절한 사람들에 반한 덕에 영국인들상당수가 포르투갈에 눌러앉았고, 그들의 고급스러운 취향도 함께포르투갈 사회에 이식되었다.


최근에는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부유층이 포르투갈에 몰려든다. 포르투갈 정부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자 5억 원 이상의 부동산을 취득하는 외국인에게 소위 황금 비자Golden Visa라는 영주권을 발급하면서 중국인을 비롯한 수많은 부자들이 포르투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포르투갈 비자는 EU 비자에 해당되니그 가치가 높다. 경기가 좋지 않은데도 포르투갈의 부동산이 폭등하는 이유다. 또한 서유럽에서 연달아 테러가 발생하면서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에어비앤비 수요도 증가했다.이 때문에 부동산 가격은 더욱 상승했고 더 많은 자본과 그 자본의 소유주들이 포르투갈로 이동했다. 낮은 물가에도 다양한 사치가 리스본에 존재하는 나름의 이유다.과거 세계 곳곳에서 영역을 넓혀가던 포르투갈이 자신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을 비롯한 전 세계 자본의 영향을 받는 상황은 뭔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당시 내가 머물던 파리와 달리 포르투갈사람들은 착하고 순박했기에 더 애틋한 마음이 들었던 걸까. 어쩌면 단순히 내 마음이 외로워서였을 수도 있다. 대다수의 포르투갈사람들은 내가 외롭다고 느낀 그 순간, 해외 자본이 유입돼 일자리가 늘어나고, 돈이 돌고,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는 물질적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난 리스본을 유럽에서 가장 외로운 도시라 우겨보고 싶다.


다행히 외로운 포르투갈 여행에서 대활약을 한 다크호스가 있었다. 뜻하지 않게도 ‘문어’였다. 문어는 서울뿐 아니라 파리에서도 비싼 음식이다. 외로운 도시 리스본에서 내 마음을 채워줄 훌륭한 요리가 필요했고, 어느 다큐 프로그램에서 스쳐 지나가듯 본 포르투갈 문어 요리는 당시 가장 먼저 떠오른 ‘좋은’ 음식이었다. 서둘러 검색한 후 예약한 식당으로 향했다. 깔끔한 공간, 리스본치고는제법 비싼 가격, 멋진 플레이팅. 하지만 문어의 맛은 기대보다 평이했다. 나쁘진 않았지만 이 정도에 만족하려고 문어에 도전한 건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고 다음 날에도 도전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리스본의 명물 문어밥. 마치 해산물 국밥 같은 느낌의 포르투갈 전통 음식인데, 리스본을 방문했던 블로거들의 호평과 달리 나에게는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어려운, 진부한 표현이지만 참으로 애매한 맛이었다.맛있는 문어 요리를 향한 나의 집념과 도전, 아니 외로웠던 나자신에 대한 보상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건가 상심하던 중, 어느 가게에서 운명적으로 마주친 문어 통조림이 나를 구원했다. 미적으로 대단히 뛰어난 디자인의 해산물 통조림으로 가득한 가게였다. 촉이 왔다. 맛이 좋을 거라는. 그리고 그 촉은 정확했다. 이틀 동안 쓴 돈과 마음고생이 잊힐 정도의 맛과 가성비를 겸비한 문어 통조림은 내게 리스본이라는 여행지의 해피엔딩을 선사했다. 


외로운 도시라 해서 낭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리의 낭만과 외로움 지수는 비례하기 마련. 언덕이 많은 리스본 구도심의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알칸타라 전망대는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촬영지로 유명한 관광지다. 석양이 질 무렵이면 리스본의 거의 모든 커플과 여행자들은 노을과 뷰, 거리 음악가들의 파두 연주를 즐기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든다. 나 역시 리스본에 머무르는동안 종종 이곳으로 향했다. 포르투갈 산 화이트 와인 한 병과 문어 통조림을 들고.


●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업은 농업, 임업과 더불어 포르투갈의 주요 산업이다. 해산물 통조림은 오랜 역사를 지닌 포르투갈의 주요 수출품이자 포르투갈을 찾은 여행객들의주요 기념품이다.



"1%의 외로움은, 나 자신을 위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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