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을 팔수록 본질은 중요합니다"
<파는 사람들>의 저자 이름은 책 제목과 같은 '파는 사람들'이다. 무려 12명의 저자가 함께 쓴 책이기에 각자의 이름 대신 모두 무언가를 '판다'는 공통점을 찾아 '파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때 '판다'는 자신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다는 뜻도 있지만 지금껏 꾸준히 파고들었던 무엇이기도 하다. 자고로 '파는 힘'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지치지 않고 파고들 때 생기는 법이니까.
책은 12명 저자의 스토리를 담은 인터뷰와 '파는 노하우'를 정리한 원고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운 좋게 편집자이자 누군가의 파는 이야기를 듣는 첫 번째 독자가 되어 저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방향이 또렷한 생각에는 울림이 있다.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텍스트로 묶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책에 미처 싣지 못한 이야기와 소감 등을 써보려 한다. 일종의 외전인 셈이다.
첫 번째 주자는 다이어트 도시락 '슬림쿡' 대표 고재현 저자. 소감부터 말하자면 고재현 저자와의 인터뷰가 끝난 후 며칠 동안 '현타'가 와서 고생을 좀 했다. 일을 대체 얼마나 열심히 (잘) 해야 하는가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저자의 이야기가 힌트가 된 반면 자극도 되었기 때문이다.
고재현 저자의 약력은 조금 독특하다. 의류쇼핑몰로 온라인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정점을 찍은 뒤에 '다이어트 도시락'이라는 전혀 다른 카테고리에서 슬림쿡을 히트시켰다. 이커머스의 무협지 버전 같은 스토리를 빠져들어 듣고 있는데 ‘위기 대처’라는 말이 훅 꽂혔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중 주춤한 시기가 한 번 있었어요. 칼로리와 식사량을 제한해 식단관리를 도와주는 개념을 전달하기 쉽게 ‘다이어트 도시락’이라고 표현했는데, 일반식품에는 다이어트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는 거예요. 물론 다이어트라는 단어를 안 써도 상관없어요. 대체할 수 있는 단어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네이버에서 ‘다이어트 도시락’을 검색하는 소비자들에게 저희 제품을 노출시킬 수 없다는 거죠. 검색광고를 못하는 거예요.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고 회사가 존폐의 기로에 있었죠. 그러다 돌파구를 찾은 게 샐러드예요. 기존 시설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고, 과대광고 이슈에도 자유로웠죠. 샐러드 판매를 시작한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스마트스토어 1등을 했던 것 같아요. 난관이 있더라도 얼마나 빠르게 대처하느냐가 회사를 운영하는 데 정말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위기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일상적으로 느껴지던 때였다. 하루 자고 나면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상황에 다른 사람들은 전부 적응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어떻게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저자가 ‘본질’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신념이나 가치관 같은 느낌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일하면서 체득한 업의 노하우였다. 시종일관 겸손하던 저자가 가장 힘주어 말한 대목이기도 했다.
“옷을 팔 때는 품질이 최우선 이슈는 아니었어요. 브랜드 옷을 사는 게 아니니 고객들도 유행 따라 가볍게 구매하거든요. 저희가 파는 옷들이 다른 데서도 똑같이 팔고 있기 때문에 품질에 대한 차별화나 소중함보다는 스타일이나 디자인을 우선시했죠.
하지만 식품은 전혀 달라요. 가격이 싼 음식을 먹기도 하지만 싸다고 질이 떨어지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진 않거든요. 제품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점점 많이 합니다. 본질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잖아요. 예전에는 그런 얘기에 공감을 못했는데 이 업을 하다 보니 본질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껴요.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제가 2014년에 경험한 모바일 기반의 이커머스 시장은 예전 2002년의 PC 기반 이커머스와 정말 비슷해요. 그때와는 시장규모가 다르고 소비자들의 생각도 변했고, 제품을 구매하는 게 아닌 가치를 구매하는 등 구매패턴은 다양해졌지만 ‘좋은 물건을 싸게 산다’는 본질은 그대로거든요.”
누구나 본질을 이야기한다. 재밌는 건 의외로 본질의 힘을 쉽게 잊어버린다는 것. 종이책은 ‘시간이 흐를수록 덜 팔리는 물건’이라는 점에서 늘 고민을 안겨주지만,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유튜브든 ‘재미 있고 의미 있는 콘텐츠’는 호응을 얻는다. 답을 알면서도 나 스스로 본질을 외면한 건 아닐까, 현타가 왔다. 이어지는 마지막 대화.
열심히 일하기는 싫은데 매출 좋은 회사로 키우고 싶고, 이런 두 마음으로 살던 괴로운 시기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극도 받고 일에 대한 즐거움을 다시 찾았어요. 제가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죠. 얼마 남지 않은 30대는 조금 더 열심히 해서 회사를 더 키워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 행복의 요소 중 일에 다시 재미가 붙었으니까. 그래서 두 번째 창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닌 회사를 키우는 창업.
회사를 키우는 창업이라..말로는 성장을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결과만 바라보고 달린 내가 보였다.
일의 목표나 성공이 아닌, 일이 주는 즐거움을 파고드는 것. 그것만큼 큰 무기가 또 있을까.
지금껏 우리가 옳다고 믿어온 것들의 기준이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 잘 파는 것을 넘어서서 무엇을 '파고들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