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다시 살아내는 용기에 대하여
오늘은 두 작가의 작품을 가지고 조금 내밀한 이야기를 하며 특집으로 꾸려 보았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 단순하고도 엄연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자주 두 갈래의 길에 선다.
죽음을 외면하며 바쁘게 내일을 향해 달려가거나,
죽음을 응시하며 오늘을 다시 살아내는 일.
필립 로스와 톨스토이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그 갈림길에서 같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문턱에서 오히려 삶의 진실을 보라고 말한다.
✔️무감각의 시대, 의식의 회복을 말하는 필립 로스
[에브리맨]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그저 한 사람, 우리 모두의 얼굴을 닮은 인물이다.
그는 몇 번의 이혼을 겪고, 자식과 멀어지고,
병원과 노화의 그림자 속에서 자신을 조금씩 잃어간다.
하지만 그의 진짜 비극은 병이 아니다.
끝까지 ‘왜 나인가’만을 묻고, 정작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묻지 못한 삶...
로스는 그 고요한 침묵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비춘다.
우리는 매일 치열하게 움직이지만, 그 속에 진짜 나의 온기가 있는지는 모른다.
남들이 정해준 기준,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 속에서 “나는 정말 살아 있는가?”라는 질문은 점점 머리가 복잡해진다.
로스는 말한다.
“삶은 위대할 필요가 없다. 다만 깨어 있어야 한다.”
그에게 인간이란, 의식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다시 자기 감각을 되찾는 존재다.
그의 문학은 우리에게 그 단순하지만 어려운 일_
살아 있다는 자각을 돌려준다.
✔️톨스토이, 죽음을 통해 삶의 본질을 보여주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깨달음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반은 세상에서 성공한 인물이었다.
성실했고, 단정했고, 누구보다 모범적이었다.
그러나 병이 찾아온 순간, 그는 생애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묻는다.
“내 삶은 정말 옳았던가?”
그 질문이 이반을 바꾼다.
그는 죽음 앞에서 비로소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하인 게라심의 손길 속에서 가식 없는 연민과 사랑을 배운다.
그는 그제야 진실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톨스토이가 말하는 구원은 거창하지 않다.
그는 완벽한 삶보다 진심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남의 시선이 아니라 자기 양심으로 살아가며,
타인에게 다가갈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죽음 앞에서도 평화로울 수 있다고.
✔️두 작가의 공명, 삶의 윤리를 다시 묻다
로스와 톨스토이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결국 하나의 물음으로 우리 앞에 선다.
“당신은 지금, 어떤 윤리로 살아가고 있는가?”
로스는 무감각에 잠든 현대인을 깨우고,
톨스토이는 자기기만 속에서 길을 잃은 인간을 붙잡는다.
두 작가가 말하는 삶의 윤리란 도덕의 문장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려는 마음,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로스는 깨어 있으라 말하고, 톨스토이는 사랑하라고 이야기한다.
둘의 목소리는 결국 하나로 모인다.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진실하게 존재했는가, 그것이 삶의 윤리다.
두 작가는 우리에게 죽음을 거울처럼 들이댄다.
그 안에서 삶의 방향을 다시 정하라고...
살아 있다는 건 단순히 숨 쉬는 일이 아니라,
하루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일이라고...
✔️‘끝’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지금’을 산다
두 작가는 마지막에 같은 말을 남긴다.
“죽음을 기억하라. 그 기억이 너를 더 인간답게 만들 것이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이 아니다.
삶을 더욱 선명하게 비추는 빛이다.
그 빛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과 관계, 시간의 의미를 다시 느낀다.
삶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기에 아름답다.
그 사실을 잊지 않을 때, 우리는 조금 더 부드럽게, 조금 더 진심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것이 두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마지막 가르침일 것이다.
언젠가 조용히 눈을 감는 날,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삶, 후회 없이 잘 살았다.”
두 작가의 이야기를 덮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오래도록 고요하다.
살아 있다는 건 여전히 어렵지만, 그럼에도 오늘 하루를 진심으로 마주하고 싶어진다.
삶의 의미는 멀리 있지 않다.
그저 깨어 있고, 누군가를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잘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오늘 하루 마음의 잔향을 다스리며 고요히 삶의 의미를 두는 시간을 보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