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를 끝내 내려놓지 못한 사람들에 대하여

진주_존 스타인벡

by 서수정


『진주』를 읽는 동안 나는 자꾸 한 장면에서 멈춰 섰다.
진주를 발견한 순간보다도, 모든 일이 이미 시작되어 버렸다는 듯한 그 불길한 예감에서였다.
진주는 너무 맑았다.
그 영롱함 앞에서 사람들의 눈빛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마을의 공기가 바뀌고 침묵의 결이 뒤틀렸다.
도시는 살아 있는 존재처럼 반응했다.
소문은 숨처럼 퍼졌고, 기대는 감염처럼 번졌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도시는 인간과 같다고...
아니, 인간의 감정이 덩어리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 도시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진주가 더 무서웠다.
그것은 부를 가져다줄 물건이 아니라, 사람들 안에 이미 존재하던 욕망과 허황됨, 기대와 탐욕을
가라앉혀 드러내는 거울 같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문장은
이 문장이었다.

“진주의 정수가 사람들의 정수와 섞여
정체 모를 어두운 침전물이 생겼다.”

진주는 변하지 않았다.
더럽혀진 것은 인간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 안에 이미 가라앉아 있던 것이 진주의 맑음 앞에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키노의 행동을 쉽게 욕망이라 부를 수 없었다.
그의 시작은 탐욕이 아니었다.
아들을 살리고 싶었고, 가족이 더는 짓밟히지 않기를 바랐으며, 자신의 삶이 동정 속에 고정되지 않기를 원했을 뿐이다.
이것을 욕망이라 부른다면, 우리는 모두 욕망적인 존재다.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순간, 이미 죄인이 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가 먼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키노가 진주를 내려놓지 못했던 이유는 돈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진주 안에는 지금까지 견뎌온 시간,
모든 굴욕과 침묵이 한 덩어리로 응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주를 버린다는 것은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 아니라, 그 모든 시간이 아무 의미도 없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나는 키노의 실패를 개인의 오판으로만 읽을 수 없었다.
어떤 사회에서는 욕망이 선택이 되지만, 어떤 사회에서는 욕망이 유일한 출구가 되기 때문이다.
진주를 내려놓지 못한 것은 키노의 약함이 아니라, 그에게 다른 선택지를 허락하지 않았던
세계의 잔인함에 더 가까웠다.
만약 키노가 상인들에게 진주를 헐값에 팔았다면
그 가족은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행복이라 부르지 못하겠다.
그것은 삶이 나아진 것이 아니라, 비극이 잠시 미뤄진 것에 가까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잔인한 것은 같은 진주라도 누가 쥐었느냐에 따라 결말이 전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의사나 상인 같은 부자가 그 진주를 얻었다면
그것은 안전한 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폭력도, 추적도, 죽음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에게만 큰 기회가 곧 위협이 되는 사회.
꿈을 꾸는 일조차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질서.
그래서 『진주』는 한 가족의 비극이 아니라,
꿈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의 초상처럼 읽힌다.
마지막 장면에서 키노와 후아나는 죽은 아들을 안고 바다로 향한다.
그들의 뒷모습은 승리도 패배도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것을 통과한 사람들의 침묵이었다.
그들이 진주를 바다로 던질 때 그 마음은 슬픔 하나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후회도, 분노도, 깨달음도 아닌 모든 감정이 지나간 뒤에 찾아오는 텅 빈 고요.
그들은 깨달아서 진주를 버린 것이 아니다.
더 이상 그것으로 아무것도 지킬 수 없게 되었기에 손에서 놓아졌을 뿐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 고통을 더 이상 다음으로 넘기지 않겠다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선택이다.
진주를 버린 것은 꿈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꿈이 더 이상 삶을 살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깊은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진주처럼 쥐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정말 우리를 살게 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우리를 대신해 삶을 증명하려 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진주』는 진주를 내려놓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묻는다. 언제까지 그 진주가 우리 삶의 전부가 되게 둘 것인가.
그래서 오늘도 키노와 후아나의 뒷모습은
비극이라기보다,
어떤 인간의 마지막 존엄처럼 내 마음속 바다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였다.
우화 같은 우리의 이야기...


"어떤 것을 지나치게 원하는 건 좋지 않다. 때로는 그것이 행운을 날려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원하는 마음은 적당한 정도여야 하고 하느님이나 신들 앞에서는 재치 있게 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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