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하는 일_채수아
이 책은 작가님께서 선물로 보내주셔서 감사히 읽었습니다.
채수아 작가님께 존경을 표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진리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여러 번 책장을 덮었다가 다시 펼쳤다.
감동 때문이라기보다는, 존경과 함께 따라오는 묘한 불편함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한결같을 수 있을까.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분명 있을 텐데, 그럼에도 사람을 향한 태도가 끝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이 책에는 작가의 삶뿐 아니라 그 삶의 결을 만들어낸 시어머님의 시간이 함께 담겨 있다.
시집살이를 겪고도 그 고통을 다음 사람에게 되돌려주지 않은 삶.
상처는 쉽게 전염되고,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겪은 방식으로 다음 세대를 대하기 마련인데, 그 마음이 끝내 고울 수 있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쉽게 말을 잃었다.
그건 인내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란 사람의 삶은 결국 비슷한 방향으로 흐른다.
길에서 마주친 할머니의 상추를 사고,
그 상추값과는 별개로 말없이 건네는 돈봉투.
이 장면은 미담처럼 설명되지 않는다.
그저 일상의 일부처럼 지나간다.
그래서 더 분명해진다.
이건 선행이 아니라 이미 삶의 체질이 되어버린 태도라는 것을...
수녀가 되고 싶었다는 고백이
조금도 낯설지 않게 느껴진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초등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자신 역시 초등교사가 되었지만,
시집살이로 삶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그녀는 일찍 교단을 떠난 퇴직교사가 된다.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안타까운 이야기다.
능력도 있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삶은 그것을 오래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삶을 불행하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었다.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반복되었다.
나는 저렇게 못 산다.
나는 계산하고,
나는 선을 긋고,
나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아주 현실적인 태도다.
그래서 이 삶은 바보 같아 보이기도 한다.
손해 보는 선택 같고, 너무 많이 내어주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이런 생각이 따라온다.
"그래도 저 사람이 있는 쪽이
세상은 조금 더 밝겠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거창한 감정이나 선언이 아니라 상처를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덮고 남은 건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라는 다짐이 아니라 훨씬 조용한 깨달음이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한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각박해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하나의 진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