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결국 나로부터 시작된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_알랭 드 보통

by 서수정


사랑은 언제나 타인을 향한 감정처럼 시작된다.
그러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끝까지 읽고 나면 이 문장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사랑은 타인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 출발점은 언제나 ‘나’였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을 운명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이상화된 구원 서사로 끌어올리지도 않는다.
대신 사랑이 한 인간의 내부에서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고, 작동하고, 변형되는지를 끝까지 따라간다.
주인공이 클로이를 사랑하는 방식은
단순히 한 사람을 향한 감정이 아니다.
그녀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고,
그 관계 안에서 ‘이렇게 사랑하는 나’로 존재하는 하나의 삶의 형태다.
그래서 클로이에 대한 사랑이 끝났을 때
사라진 것은 관계만이 아니다.
그 사랑 속에서 살아가던 존재의 한 국면이 함께 끝난다.
그것은 이별이라기보다 한 사람의 일부가 조용히 물러나는 사건처럼 느껴진다.

이 소설이 인상적인 이유는 그 상실을 서둘러 정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말하지 않는다.
“다시 괜찮아질 것이다.”
대신 이렇게 보여준다.
사랑이 깊었다면, 그만큼 오래 흔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때 노스탤지어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리운 것은 클로이 그 자체라기보다,
그 사랑 속에서 살아가던 더 쉽게 믿었고, 더 깊이 흔들렸던 나 자신이다.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영혼은 늘 같은 속도로 따라오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의 끝은 항상 존재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는 누구였는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되었는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잃었는가.

이때 우리는 종종 사랑을 운명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언어를 조용히 거두어들인다.
사랑은 초월적인 사건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통과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랑은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자신을 소진시키기도 한다.
상대를 구원해야만 자기 존재가 증명되는 관계.
이 소설은 그런 사랑 역시 사랑의 이름으로 쉽게 정당화하지 않는다.
결국 이 책이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이것 하나로 모인다.

사랑은 타인을 향한 감정일까,
아니면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려는 시도일까.

알랭 드 보통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보여준다.
사랑은 우리를 완성시키지 않지만,
사랑을 통해 우리는 어떤 존재로 살아왔는지를
가장 솔직하게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을.
사랑은 끝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을 통과한 나는
이전의 나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사랑은 관계를 넘어 존재의 결을 바꾸는 경험으로 남는다.
그래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로맨스 소설이지만 통속적이지 않고,
사랑 이야기이지만
결국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통과해 가는 이야기로 남는다.
사랑은 결국, 너를 향해 가지만 나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타인을 통해 완성되는 감정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드러나는 가장 솔직한 경험이다.

솔직 담백한 인간의 사랑의 생애를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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