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지는 것들에 대하여

불멸_밀란 쿤데라

by 서수정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읽으며 나는 여러 번 같은 생각으로 되돌아왔다.
사람은 죽은 뒤에도 정말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더 이상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비로소 살아남는 걸까.
이 소설에서 불멸은 축복처럼 다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멸은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이기를 멈추는 지점, 타인의 말과 기억과 해석 속으로 흩어지는 상태에 가깝다.
괴테가 말한 것처럼, 그것은 영광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재판이다.
이 재판은 언제나 타인에 의해 열리고, 당사자는 이미 자리에 없다.
아녜스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이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순간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려 들 때, 그 이해가 이미 왜곡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설명하려 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으며, 삶을 어떤 이야기로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녜스에게 중요한 것은 의미가 아니라 감각이다.
말이 아니라, 존재의 결이다.
물의 움직임, 바람의 스침, 혼자 있는 시간의 밀도.
그녀는 그 순간들 속에서만 자신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런데 『불멸』은 이렇게 이미지로 남지 않으려 했던 인물을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불멸하게 만든다.
아녜스의 죽음은 갑작스럽고, 거의 무심하게 지나간다.
고속도로 위에서 벌어진 사고, 소녀를 피하려다 이어진 충돌들 속에 그녀는 조용히 포함된다.
쿤데라는 이 죽음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죽었는가가 아니라, 죽은 뒤 무엇이 시작되는가이기 때문이다.
아녜스가 사라진 후, 사람들은 그녀를 말하기 시작한다.
폴은 사랑했던 아녜스를 기억하고, 로라는 언니를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며, 이베리누스 교수는 그녀를 사유의 대상으로 전환한다.
이때부터 아녜스는 더 이상 하나의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여러 개의 이야기로 나뉘고, 각자의 욕망과 관점 속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남는다.
쿤데라는 이 상태를 불멸이라고 부른다.
이 불멸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안에는 아녜스 자신이 없다는 점이다.
그녀의 침묵, 망설임, 말하지 않음, 설명되지 않았던 내면은 모두 지워지고, 대신 타인에게 이해되기 쉬운 형태만이 남는다.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 이후에 시작되는 이 과정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타인들이 우리를 대신해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래서 『불멸』은 기억에 관한 소설이면서도,
동시에 기억을 경계하는 소설이다.
남고 싶다는 욕망보다 어떻게 남게 되는지를 묻는 소설이다.
쿤데라는 묻는다.
우리는 정말 기억되고 싶은가.
아니면, 왜곡되지 않고 싶을 뿐인가.
이 질문은 예술가와 위인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작품이나 연설을 남기지 않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는 모두, 죽은 뒤에 누군가의 말속에서 다시 만들어질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불멸』을 덮으며 나는 더 이상 “어떤 불멸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지 않게 되었다.
대신 이렇게 묻게 된다.
나는 살아 있는 동안,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 자신의 감각에 충실했는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기보다는, 지나간 후에도 쉽게 단정되지 않을 삶을 살았는가.
아녜스는 그 질문을 끝까지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질문을 남긴 채 사라진다.
그리고 어쩌면 쿤데라가 우리에게 남기고 싶었던 것도
정답이 아니라 바로 그 사유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책을 덮은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설명하려 애쓰는가.
오해받지 않기 위해, 다르게 기억되지 않기 위해,
혹은 조금 더 좋아 보이기 위해 말을 덧붙이고, 이미지를 고치고, 자신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려 한다.
하지만 『불멸』을 읽고 나면 그 노력 자체가
이미 또 다른 왜곡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녜스가 끝내 말을 아끼고, 설명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완전히 이해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쉽게 해석되지 않는 상태로 남기를 원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한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는 사람으로...
이 소설이 우리에게 남기는 성찰은 어쩌면 아주 단순하다.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보다, 얼마나 자신에게 가까운 삶을 살았는가를 묻는 일.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 자신의 감각과 리듬에
조금 더 충실했는지.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이미지가 아니라 존재로 머물렀는지.
『불멸』은 불멸을 꿈꾸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불멸이 시작되는 지점이 언제나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방식 그 자체였음을
조용히 일깨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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