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탱고_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 사탄의 리듬 속에서 나의 발걸음을 찾기까지
아침은 늘 고요하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나는 책을 펼치거나, 잠깐 몸을 깨우는 작은 운동으로 하루를 연다.
이 시간은 누구로부터도 빼앗기지 않은, 아주 사적인 영역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고요함 속에서도 간혹 묘한 감정이 스며든다.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앞으로 나아가는 걸까,
아니면 제자리에서 맴도는 걸음을 잘못 ‘전진’이라고 믿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을 가장 깊게 확인하게 만든 책이
크러스너 호르커이의 [사탄탱고]였다.
탱고처럼 여섯 걸음 앞으로, 다시 여섯 걸음 뒤로…
이 책의 시간은 흐르면서도 되돌아가고,
앞으로 가는 듯 보이지만 언제나 후퇴를 품고 있었다.
그 리듬이 내 삶의 아침들과 겹쳐지며 묘하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 절망 속 인간은 왜 스스로 걷지 못하는가
소설 속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이끌리고, 흔들리고, 기대기만 한다.
그들은 전진을 꿈꾸지만, 실제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왜 스스로 걸으려 하지 않았을까?”
“왜 그들은 끝까지 자기 발걸음을 믿지 못했을까?”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졌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들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절망이 너무 깊어서 판단할 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었다.
절망은 사람을 어둡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그 무력감이 그들을 사탄의 리듬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장면은 우리 일상에서도 낯설지 않았다.
| 에슈티케의 전락, 의사의 침묵, 그리고 나의 마음
어른들의 희망에서조차 배제된 어린 에슈티케,
세계의 균열을 기록하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의사,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며 흩어지는 마을 사람들...
그들의 모습은 삶에서 한 번쯤 마주했던 내 감정들과 겹쳤다.
• 너무 지친 나머지
무엇도 판단할 수 없었던 순간,
• 보고만 있을 뿐 행동하지 못했던 나,
• 남의 기준과 말에 기대며 내 방향을 놓쳤던 시간들.
그 모든 얼굴들이
책 속 인물들의 균열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삶의 탱고는 누가 추고 있을까
책을 읽다 보니
가장 아팠던 건
이리미아시가 사람들을 속였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리듬을 스스로에게서 찾으려 하지 않았던 점이었다.
구원을 기다리는 순간,
인간은 이미 누군가의 발걸음에 얹혀 있는 상태다.
그들은 전진을 원했지만
발걸음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순간
이미 후퇴의 스텝을 밟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 누구의 리듬에 맞춰 걷고 있을까?”
“나만의 스텝을 만들려는 용기는 충분한가?”
| 되감기는 시간 속에서도
나 자신에게 다시 걸음을 건네는 일,
[사탄탱고]가 말하려는 건 단순히 절망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전진처럼 보이는 삶이 사실은 얼마나 쉽게 되감기고, 반복되고, 때론 후퇴와 착각이 뒤섞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은 깊은 절망의 세계 속에서도
아주 미세한 희망의 결을 남긴다.
그것은 거창한 의지나 큰 결심이 아니라,
“내가 먼저 걸어보겠다”는 작은 의지이다.
작은 걸음 하나를 남이 아니라 내가 시작하겠다는 마음.
아침의 고요 속에서 책을 읽고, 몸을 깨우고, 사유하는 내 루틴이 사실은 그 작은 걸음을 위한 준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나는 매일 아침 묻는다.
“오늘 나는 진짜로 나의 스텝을 밟을 수 있을까?”
삶의 탱고는 누가 대신 춰줄 수 없다.
오늘도 나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만의 발걸음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