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 밥상에 담긴, 책으로 배운 딸의 손맛
기차 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마음을 두드리던 어느 월요일 아침,
나는 서울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딸이 자취를 시작하면서 서울에 갈 일이 생기면 머물 곳이 있다는 게 은근 든든해졌다.
그런데 딱히 무엇을 기대하지 않았던 그날, 딸에게 “딸이 해주는 밥 먹고 싶은데”라는 말 한마디를 던진 순간부터 작지만 따뜻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미역국 중에 고르라며 장난 반 진심 반으로 톡을 보내온 딸.
건대입구역 1번 출구에 우산을 들고 서 있던 아이를 몇 달 만에 보자마자 마음이 찌릿했다.
예쁘게, 또 대견했다.
딸의 자취방은 넓진 않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잘 꾸려져 있었다.
작지만 정돈된 공간, 냉동실에 차곡차곡 소분된 밥 등 아이가 자신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로 상다리는 휘어지지 않았지만 딸이 차려준 밥은 엄마의 마음까지 데워주는 따뜻한 집밥이었다.
“엄마, 이 김치찌개에서 엄마맛이 나는 것 같지 않아?” 라며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릴 적 언제나 오빠의 뒤에 가려 아기 같던 딸이 어느새 이렇게 컸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런 딸의 모습은 단순히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자란 결과는 아니었다.
나는 알고 있다. 이 아이가 어릴 적부터 늘 책과 가까이 지냈다는 것을 ….
음식을 만들고 싶다고 하면 한참을 레시피 책을 들여다보며 따라 만들었다.
뜨개질을 배우고 싶다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모자에 꽈배기 무늬도 넣고 옷에 단추를 달고 손목이 아플 때까지 실을 감던 모습도 선하다.
한 번은 아들이 프랑스 요리를 해준다며 프랑스 요리 책을 사달라고 했다.
양고기 요리를 동생에게 해 준다고 온 집을 난리를 쳐 놓던 기억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 바쁘게 일을 하던 때라서 아이들이 그렇게라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자체도 기뻤었다.
뒤처리는 내 차지였지만…….
누군가는 요리는 손 맛이라 하고, 살림은 경험이라 하지만 그 모든 시작을 책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아이들을 보며 알게 되었다.
책은 늘 정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방향을 제시해 준다.
그리고 그 방향을 따라 한 걸음씩 걷다 보면 어느새 사람은 스스로 삶을 짓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조용한 책 한 권이 누군가의 밥상이 되고 옷이 되며 하루의 루틴이 되는 기적은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반복과 신뢰의 힘, 그리고 ‘배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 작은 독서의 힘이 어떻게 삶을 짓는지를 곁에서 오래 지켜보았기에 오늘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삶이 조금 낯설고 버겁게 느껴질 때 책과 함께 하루를 짜보는 건 어떨까요?
책은 당신의 삶을 바꿔놓지는 않더라도 분명히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요.
아이와의 일상에서 책은 언제나 조용히 존재해 왔고 그 조용한 독서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부드럽고 단단하게 ㅁ나들어주는지 전해주고 싶다.
누구든지 인새의 작은 기술이든 큰 선택이즌 책과 함께 걷는 연습을 해보았으면 한다.
그 길은 느릴 수 있지만 따뜻하고 단단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