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 한 권이 말해주는 것들
이따금 책장을 정리하다 보면 한쪽 구석에 차곡차곡 꽂아 둔 공책 더미를 발견하게 된다.
이제는 대학생, 대학원생에 진학한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써오던 공책들이다.
아직도 나는 그 공책들을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거기엔 단지 공부의 흔적만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사고를 키우고 감정을 다듬고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려 애썼던 긴 시간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기록하는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
처음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시집 한 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공책에 자신의 생각을 ‘시’라는 것을 써보도록 했고, 아이들은 한 장씩 쓰면서 본인의 문집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아이가 학교 입학하고 고학년, 중학생이 되면서 수업 내용을 정리하고 내용을 옮겨 적던 작은 공책들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안에 자기 방식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수학의 오답 옆엔 왜 틀렸는지 적었고, 사회나 과학은 흐름과 원리를 이해하는 화살표 등도 활용하며 정리했다.
국어는 가장 흥미로운 영역이었는데, 등장인물의 감정을 자기 말로 써보기도 하고 가끔은 수업과 상관없는 짧은 문장을 작은 여백에 적어 보기도 하며 남겨두기도 했다.
그건 누가 시킨 일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익혀낸 생각의 언어였다.
“잠시 생각해 보니 어릴 적부터 독서 한 줄 노트 쓰기, 오늘의 할 일 계획표 쓰기, 용돈 기입장 기록 등 하루하루 미루지 않고 기록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을 알게 되었다. ”
기록은 단지 학습의 도구가 아니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이는 공책에 정리하는 것이 빛을 발했다.
과목도 많아지고 공부의 양도 많아져서 하루의 공부 시간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예를 들면, 아이는 ‘수학의 정석’을 공부하면서 내용을 공책에 각 챕터별로 정리하게 시작했다.
그렇게 정리해 둔 내용은 시험을 볼 때나 공부하면서 찾아보고 싶은 부분은 찾아볼 수 있는 장점을 활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리 노트는 단지 정리의 공간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그 공책을 통해 자기 자신들이 훈련하고 복잡한 개념들, 헷갈리는 부분들은 다시 써보았고, 질문을 찾아 적어보기도 하였다.
이것은 이해의 흐름과 정리의 감각을 훈련하는 동시에 감정의 변화나 작은 메모까지 남기며 글쓰기와 사유의 습관을 만들어 간 것이다.
그 습관은 단단한 뿌리를 내렸고 어렵다는 의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대학원에서 설계를 하며 자신의 인문학적 소양을 맘껏 발휘하고 있다.
그 무든 시작은 바로 그 공책 한 권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공책은 결국 삶의 자산이 되었다
아이들은 대학 입하하면서 과외를 시작했다.
그들은 과거에 정리해 둔 공책을 찾아 복습을 하며 아이들을 가르쳤고 뿌듯해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때 내가 왜 이렇게 정리해 두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네요^^ 이것으로 설면하면 학생들도 이해하기 쉬 울 것 같네요~ 이렇게 정리해 두니 너무 좋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웃음이 났다. 그리고 자랑스러웠다.
시간이 흘러도 그 기록은 여전히 제 몫을 다하고 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기록은 결국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것도 더 나은 사람으로 자랐을 때 가장 조용하고 확실하게 그 힘을 발휘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때론 공부를 ‘성적’으로만 바라보지만, 실은 배움이란 그렇게 하루하루 적어 내려 가고 자신의 생각과 사유, 공부의 흔적이 쌓이는 일일 것이다.
기록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어설픈 문장, 미완의 이해, 끄적임의 흔적조차도 그대로 적혀 있을 때 그건 세상의 하나뿐인 자기만의 언어가 되고 자산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공책이라는 조용한 공간 안에서 자랐고, 이제는 자기만의 목소리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공책 한 권 한 권에는 그렇게 아이의 사고력과 감정, 배움의 태도가 천천히 녹아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이면 충분하다 생각한다.
#아이가 오래도록 지켜온 노트 정리법
*배운 내용을 자기 말로 정리하기 : 스스로의 언어로 풀어쓰려고 애썼다.
*질문 남기기 : 이해되지 않는 개념등은 여백의 공간에 남겨두었다.
*다양한 색상의 펜 활용하기 : 흐름을 잘 보이도록 색을 사용하였다.
*오답 노트 정리하며 틀린 문제 분석하기 : 정답만 확인하는 것이 아닌 왜 틀렸는지 스스로 점검했다.
*과목별 정리를 통해 필요할 때 활용하였다. : 공부한 내용만 정리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활용하는 참고서 역할 을 하였다.
아이들이 자신의 공책을 서울로 가지고 올라가서 집에 남아있는 몇권의 공책만 공유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