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라는 이름의 불빛 아래에서

<작가특집 : 단테, 쿤데라, 카뮈와 함께 걷는 사유의 여정 >

by 서수정

책상 앞에 앉아 단테의 [신곡]을 읽으며 나는 17곡의 어느 구절 앞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 우연이란 어떤 식으로도 너희 세상의 책을 넘어서서 확정할 수 없다 "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울렸다.

나는 왜 이토록 오랫동안 '우연'이라는 단어에 마음을 쓰며 살아왔는가.

예상치 못한 사건을 불운이라 여기고 계획되지 않은 만남을 경계하고, 운명 바깥의 일들 앞에서 자주 주춤했으면서도 그 안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별로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이 문장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떠오른 두 권의 책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내가 너무 애정하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 두 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이방인].

내게 큰 영향을 주었던 작품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세 책의 세계를 '우연'이라는 하나의 사유의 끈으로 이어보고 싶어졌다

삶에서 우연이란 어떤 의미로 작동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우연 속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가?



단테 _ 신 안의 우연, 필연으로 이끄는 손길


단테의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이라는 세 층위를 지나 신의 빛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인물들 - 우연처럼 읽힌 삶과 죽음의 이야기들 - 그 안에서 단테는 말한다.


"우연이란 신의 섭리를 알지 못하는 인간의 이름일 뿐이다. "


우리 눈에 '우연'으로 보이는 사건도 신의 질서 아래에선 모두 의미 있는 연결이다.

고통이 닥쳤을 때 우리는 왜냐고 묻지만 단테는 '왜'조차 신의 책 속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말없이 우주조차 정밀한 음표처럼 움직인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우주의 질서를 보는 눈을 인간도 가질 수 있다고 시를 통해 말하고 있었다.



쿤데라 _ 반복 없는 존재의 유일한 반짝임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삶을 반복할 수 없기에 가볍다고 말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그 한 번은 절대 되돌릴 수 없기에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고....

그의 인물들은 우연한 만남, 우연한 선택 앞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그들은 인생이 하나의 실험도 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는 사실 앞에서 흔들린다.

하지만 그 '가벼움' 속에서도 순간순간이 지난 단 하나의 무게를 발견한다.

그는 말한다.

우연은 삶을 정의하지 못하지만 삶의 아름다움은 오히려 그 우연에서 비롯된다고...



카뮈 _ 우연은 부조리, 그러나 그 안의 당당함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아무런 의지도 없이 우연히 범죄를 저지른다.

세상은 그를 재단하고 정의하려 하지만 그는 부조리함을 인정한 채 삶을 직시하는 태도를 택한다.

카뮈는 말한다.

싦에는 절대적인 의미가 없다고.

그러나 의미 없음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그 무의미함 속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이다.

그래서 뫼르소는 말미에서 오히려 평온해진다.

태양과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삶을 사랑하려는 사람으로....

그에게 우연은 혼란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 속에도 우리는 자신만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




나, 그들 사이에서 _ 삶 안에서 작가들과 마주 서다


단테를 읽으며 나는 문득 내 삶을 떠올렸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견디기 어려운 순간을 마주한다.

그때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묻곤 했지만, 단테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 물음 속에도 신의 손길이 있다면?"

고통이 곧 길이 되는 신곡의 여정처럼, 나 또한 지금 이 순간을 견디는 의미를 스스로 찾아야 했다.


그리고 쿤데라는 펼치면 내가 가볍다고 느꼈던 삶의 순간들이 문득 특별하게 다가온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이 계절,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어떤 사람, 그리고 단 한번뿐인 지금 이 시간.

그 모든 우연들이 어쩌면 나의 삶을 가장 뜨겁게 빛내주는 순간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카뮈 앞에선 오히려 나는 말이 없어진다.

삶이 아무리 이해되지 않아도 부조리와 무의미가 감싸고 있어도 그 안에서도 내가 어떤 태도를 지닐 것인지는 내 몫임을 그는 조용히 일깨워 주었다.


이 세 작가가 우연을 마주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다.

그들이 쓴 작품 속 인물이나, 그들, 그리고 내게 벌어진 많은 일들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마저도 우연이라기엔 절묘하고 절실했다.

그 우연이 하나의 선물처럼 다가왔기에 나는 다시 펜을 들고 내 삶을 써내려 간다.


우연은 우리의 삶을 이끄는 방향타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우연 속에서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어떤 태도로 어떤 의미를 만들어가는데 그것이 결국 '나'라는 존재를 빚어낸다.


그래서 문학은 늘 내게 먼저 묻는다.

'너는 어떤 우연을 느끼고 있나'

나는 그 질문에 '나는 오늘도 나만의 방식으로 답하며 그 우연의 끈을 잡고 있다고...'

삶은 뜻대로 되지 않지만 그 속에서 우연히 흘러 나온다면, 나는 그 문을 조심스레 열어 볼 것이다.


혹시 모른다.

그 문 너머, 새로운 나의 의미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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