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김인정 <고통 구경하는 사회>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아침이었다. 기분도 가볍고 평화로운 오전이었다. 업무 서류 우편 발송 차 우체국에 가는 길. 엄마와 통화도 하며 걷고 있었다.
특이점이라면 그 우체국은 스테인리스 방범용 대문으로 막혀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사를 지키고 선 경찰 5~6명이 문을 열어준다. 갈 때마다 어수룩한 소시민의 표정을 장착하고 우편물을 살짝 뽐내면 무사통과할 수 있다.
우체국이 있는 코너를 돌자마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집회야 늘 있는 일이었다. 오늘은 어느 단체일까 싶어 구경할 심산이었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시청각적으로 가히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놀란 나머지 통화 중이던 전화를 끊는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끊어버렸다.
여러 사람이 둘러싼 가운데, 흰 소복을 입은 중년 여성 두 명이 검회색 콘크리트 바닥에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내 자식은…" 어쩌고 하면서.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공기를 찢는 것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경찰들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보였다.
눈 둘 곳을 찾다가 황급히 '이태원', '진상규명', '특별법' 등의 손팻말로 시선을 옮겼다. 감히 내가 보면 안 될 것 같았다. 구경하기엔 죄스러웠고, 목격하기엔 현실감이 없었다.
그야말로 ‘고통’을 목도한 것이었다.
내가 죄인인양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여전히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기다리는 동안 대기석에 앉아 있었지만, 그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몸을 웅크리고 울부짖던 뒷모습, 바닥에 흐트러진 소복의 자락, 짐승처럼 터져 나오던 소리.
'유가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분들은 이미 ‘엄마’나 ‘아빠’라는 이름보다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죽음과 함께 이름표처럼 붙어버린 호칭. 그 단어에 고통과 분노, 끝없는 후회와 비통함이 눌러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나는 ‘유가족’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넘겨왔던 것 같다. 마치 '희생자', '피해자'처럼 하나의 범주로 묶어 두고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지나쳤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유가족'이라는 이름 안에 갇혀 있지 않았다. 울부짖고, 매달리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붙잡으려 애쓰는 '어떤 사람'들이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유가족의 고통은 누군가 '구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감히 멀찍이 서서 '안됐다'는 감상만 품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 고통은 '누군가의 일'이 아니라,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기억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걸.
우편물을 접수하고 나와 다시 그 길을 지났다. 여전히 울음소리는 멀리서 들려왔다. 멀어지는 울음소리가 왠지 점점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