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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없는 문제

공익을 위한 희생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by 북수돌
굉장히 좋아하는 책으로 남을 거야

모옌 <개구리>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말을 곱씹어 보았다. 소소한 비인도적 행위로 위대한 인도주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 개인의 작은 인내와 희생으로 사회 전체에 공헌하는 것. 듣기에야 번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꽤 잔인하다.


이 문제에 대해 나라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다. 만약 희생해야 하는 사람이 '나'라면? 아마 나는 "아, 맘 편하게 내가 희생할게. 죽을게."라고 말할 것 같다. 내가 죽어서 모두가 살 수 있다면, 그건 그나마 편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희생해야 할 사람이 노쇠해버린 사랑하는 내 부모라면? 하나뿐인 작은 내 아이(없음)라면? 그렇게 약하고 소중한 존재가 희생의 대상이 된다면, 나는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다.


책 속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 모두를 위한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결정이 된다. "국가를 위해", "모두를 위해"라는 대의명분이 내 가족의 생명을 앗아가는 순간, 그 명분이 과연 정당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영화처럼 겁나 센 마동석이 나타나 다 해결해주든지, 갑자기 다 착해져서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든지. 그런 비현실적인 결말 외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대위소희'라는 개념은 결국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 같다. 동행, 공생 같은 우아한 단어로 살짝 덮어놓을 수 있지만, 그건 본질을 비껴가는 말장난일 뿐이다. 현명해지고 싶어서 답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정답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이 문제에 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있을까? 어쩌면 중요한 건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을 놓치지 않고 계속 고민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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