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책
안녕 S,
나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에 축하와 너의 생각이 담긴 편지를 받아서 기뻤어. 9월 초부터 스위스는 아침 공기도 시원하고 저녁은 더 이상 늦게까지 밝지 않아. 9월이 빠르게 지나갔고 이제 네 생일이 다가왔네. 생일 진심으로 축하해!
작년, 그렇게 더운 날씨는 서울에서 정말 처음으로 경험했어. 박물관에 가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실은 우리가 만나기 30분 전에 많은 일을 겪었어. 우선 그날 처음으로 지하철을 탔기 때문에 을지로4가역에 있는 두 개의 계단 중 어느 계단으로 가야 하는지 알아내야만 했어. 광화문역에 도착했을 땐 잘못된 출구로 나가서 길 반대편으로 갔고. 더위 속에 길을 헤매다 보니 너를 마주했을 때 티셔츠가 이미 땀으로 젖어 있을 수밖에.
더위를 식힌 후 박물관 구경은 흥미로웠어. 이후 일정에서 너의 즉흥적인 제안으로 하게 된 일들도 재미있었어. 냉면과 빙수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고. 사서로서 그날 내 기억에 남은 또 다른 경험은 알라딘 방문이었어. 책을 검색하면 책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책이 어느 서가에 있는지까지 알 수 있다는 게 놀랍더라. 스위스에서는 그런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면 서점 직원에게 물어봐야 하거든. 나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한국 서점이 좋았어. ;)
가을에 네가 스위스를 온 일은 나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어. 날씨가 좋아서 Üetliberg까지 올라가 경치를 즐길 수 있었잖아. 또, 내 일상 속 장소들을 너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기뻤어. 직접 쓴 글이 담긴 책을 가져다준 것도 정말 고마웠고. 가끔 내가 '직업병'으로 너를 즐겁게 했던 그날이 생각나. 네가 준 책을 받고 책의 내용을 읽기도 전에 인쇄 형태 및 서지 정보를 자세히 살펴봤지. 너는 내가 내용보다 세부 정보를 더 자세히 살펴본다며 매우 재밌어했어.
그러고 보면 너는 스위스를 방문한 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으로 향했지. 그게 아마도 네가 가을을 독서와 연결하는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
네가 맞았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과 가을이야. 겨울에는 봄이 가져오는 따스한 햇살을 갈망하고, 가을은 여름에는 찾을 수 없었던 시원함을 가져다줘. 내 집 앞에 서 있는 큰 나무를 기억해? 그 나무를 보면 가을이 왔음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어. 여름에는 그 나무가 아주 많은 그늘을 드리워 주지만, 가을이 되어 잎이 떨어지면 점점 더 많은 빛이 스며들기 시작해. 네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네가 그 나무 아래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모습을 상상해 봤어. 특히 네가 다람쥐에 관해 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그 나무에서 호두를 모으는 다람쥐들을 자주 보곤 하거든.
가을이면 스위스의 풍경은 종종 안개로 뒤덮여, 때로는 몇 미터밖에 보이지 않을 때가 있어. 기차를 타고 출근하며 창밖을 바라보면,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가 갑자기 다시 반가운 햇살을 마주하곤 해. 이런 기차 여행이 정말 마음에 드는데, 어두운 시절에도 항상 태양이 빛나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야.
도서관에 가는 길에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궁금해했지. 나는 한 쪽 눈의 시력을 부분적으로 잃은 이후로, 도시를 다닐 때 조심스러워졌어. 하지만 알다시피, 나는 여전히 음악을 듣는 것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노래를 들으며 오히려 주변 환경에 집중하게 됐어. 그 덕분에 나는 일상 속 아름다운 장면들을 계속해서 발견하고 사진으로 담고 있어.
도서관에서 지하실 서고에 자주 가지 않지만, 여전히 그곳의 방대한 책 수에 감탄해. 서고의 책들은 모두 내게 등을 돌리고 있어서 오히려 내 일을 편하게 할 수 있어. 사무실에서는 다양한 책들에 빠져들 수 있는데, 요즘 한국 책들의 번역본도 점점 더 많이 보이는 것 같아. 내 생각에는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영향이 어느 정도 있는 듯해.
너의 책 추천은 우리 대화에 매우 잘 맞는 것 같아. 편지를 읽고, 바로 도서관에서 <모순>을 찾아봤어. 실제로 영어 번역본인 'Contradiction'이 내가 일하는 도서관에 있더라. 곧 빌려서 읽어보고 감상 전할게.
나도 너처럼 스무 살 때는 앞으로 두려움이 줄어들 거라 기대했어. 비록 스무 살 초반 다섯 해가 정신적·신체적인 건강 문제로 가득했지만, 그래도 나는 낙관적으로 살고 싶어. 낙관적인 태도는 오롯이 내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
가을에 몇 가지 계획을 세웠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쁘다. 즐겁게 지내길 바라! 다음 만남까지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짧기를.
너의 L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