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영화 - K의 답장

by 북극성 문학일기
5.png

겨울과 영화


사랑하는 S에게,


아름다운 겨울 편지를 보내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번 해는 저에게 특별한 해였어요. 독일에서는 가을과 겨울이 되면, 이별과 죽음을 자주 생각해요. 11월에는 가톨릭 신자들이 ‘모든 성인의 날(Allerheiligen)’과 ‘망자의 날(Allerseelen)’을 지내요. 이날은 세상을 떠난 이들과 그들의 영혼을 기리는 날이에요. 신자들은 ‘참회와 기도의 날(Buß- und Bettag)’을 보내며, 자기 삶과 실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죠. 저는 이런 가치들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그 일원이 아니에요.


S의 편지에서 ‘어머니와 딸의 관계’ 이야기가 나와서, 이번엔 저도 제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어머니는 아버지와 45년 동안 결혼생활을 하셨고, 두 분은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셨어요. 아버지가 병으로 고생하실 때, 어머니는 자신의 신장을 하나 떼어 아버지께 이식하셨어요. 그 덕분에 아버지는 몇 년 더 건강히 지내실 수 있었죠. 2002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 어머니는 깊은 슬픔에 잠기셨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회사를 운영하던 아버지 대신 재정 업무를 도맡으셨고, 그 회사를 지금은 제 오빠가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어요.


그와 동시에, 어머니는 가족에게 전념하셨죠. 자식들, 손주들, 형제자매, 친구들. 그 모든 사람을 마음 깊이 아끼셨어요. 어머니는 예술과 역사에도 관심이 많으셨고, 박물관에 가기를 정말 좋아하셨답니다. 또 열정적인 등산가였고, 모험심이 넘치셨으며, 삶을 사랑하셨죠. 손주들에게 멋진 이야기와 놀이를 직접 만들어주는 다정한 할머니이기도 했어요.


지난달, 어머니는 89세의 나이로 암 투병 끝에 자택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 마지막 시간에 저와 오빠들이 곁에 있을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행운이었어요.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어머니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요. ‘왜 나는 감사함을 더 많이 표현하지 못했을까?’ ‘왜 가끔은 그렇게 불친절했을까?’ 하지만, 어머니는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분명히 알고 계셨을 거예요.


〈윤희에게〉라는 영화를 저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위키백과에서 줄거리를 찾아봤어요.〈캐롤〉처럼 ‘허락되지 않은 사랑’, 즉 동성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더군요. 한국에서 레즈비언 혹은 게이 커플이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독일에서는 지금 동성 부부가 이성 부부와 거의 같은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어요. 제 조카가 2024년 9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어요. 시험관 시술 덕분에 지난해 11월에 매력적인 아들을 낳았답니다. 9년 전, 오빠는 이혼했어요. 그런데 오빠는 2023년 여름에 다시 결혼해서 또 한 번 아빠가 되었어요. 저는 그 용기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물었던 질문이 생각나요.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나는 좀 더 자유로웠을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어떤 일들은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요. 아이를 세상에 낳는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그건 감정의 롤러코스터예요. 기쁨, 부담감, 두려움, 그리고 넘쳐흐르는 사랑이 동시에 찾아오죠. 첫 아이를 품었을 때의 경이로움, 그리고 두 번째 아이 V가 태어났을 때, ‘두 사람을 동시에, 그리고 남편까지. 이 사랑을 다 나눌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어요. 하지만 가능했어요.


저는 남편 J를 아주 많이 사랑해요. 아이 없이 둘만의 삶을 살았다면, 그래도 아마 행복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의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데서 온다고 믿어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명감이나 큰 목표가 인생의 행복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 행복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삶을 함께 나누는 거예요. 완전한 자유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우리는 모두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떤 규칙 속에서 살아가야 하니까요. 그리고 저는 완벽한 독립이나 자유가 반드시 행복을 가져온다고 믿지도 않아요. 의무나 책임이 없는 삶에서 진정한 행복이 가능할까요? 가족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기반 아닐까요.


S의 편지는 정말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어요. 아직 다 곱씹지 못했어요. 그래도 제 생각의 단상이 겨울편지에 꼭 이어져 들어갔으면 해요. 곧 겨울이 오네요. 다행히 S가 보내준 차와 윷놀이 세트가 아직 있어요. S의 어머니는 정말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법을 아시는 분이에요. S, 저는 종종 당신을 떠올려요. 그리고 멀리서 전해지는 S의 소식이 늘 고마워요. 항상 사랑을 담아,


당신의 K가





월요일 연재
이전 09화겨울과 영화 - K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