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가 때로는 위로가 된다.

by 녹차파우더

눈 뜨고 지새운 밤들이 많았다. 슬프고 괴롭고 힘든 일이 있으면 혼자 방에 처박혀 아무도 없을 때 소리 내며 우는 게 고작이었다. 당시에는 사람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감춰야 성인이었고, 혼자서 잘 삭혀야 어른이었다. 결국 울분을 제어하지 못해 터트리면 몇 날 며칠을 괴로워하고 상대방에게 미안했다.


관계가 어그러진 날, 억울한 마음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메시지를 통해 전달했다. 속은 시원했지만 좋은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다. 집에만 있으면 괴로운 생각들에 눌려 그저 우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무작정 귀에 음악을 꽂고 집 근처 한강으로 뛰어나갔다.

사람들은 즐거운 듯 친구와 연인 그리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활기차고 따스한 분위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석양에 지는 한강물도 나보다 더 외롭지 않아 보였다. 혼자서 유모차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시는 할머니도 매우 행복해 보였다.


걷고 또 걸으며 마음과 몸이 지칠 때로 지쳤지만,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면 혼자 적막을 지킬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밤에 잠을 자지 못했던 날이 점점 줄고, 하루 종일 슬픈 노래를 들으면서 모자로 눈물을 가리는 횟수도 점점 줄었다. 한강 길을 걷다가 힘이 들면 벤치에 앉아 짤막한 웃긴 영상들을 보며 억지로 웃어 보기도 했다.


가장 약하고 무기력했던 자신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곳은 오직 한강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 틈에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고, 무관심한 그들에게서 사람이라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차차 상태가 나아지고 주변 지인들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잠수를 타고 힘들었던 내게 그들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평소처럼 나를 대했다. 잘 돌아와 주었다며 토닥여주는 손길에 그제야 감추기 급급하고 가장 감추고 싶었던 모습을 처음으로 들키고 말았다.



그때부터 고민이 생기거나 머릿속이 복잡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일이 생기면 무작정 편한 옷을 입고 한강이나 공원을 걸었다. 의논을 하기도 하지만 가끔 앉아서 고민을 하는 것보다 걸으면서 생각을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무겁게 느껴졌던 문제들이 집에 돌아왔을 땐 작고 사소한 문제로 변했다.

걷는다고 해서 오로지 일어난 상황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딴생각을 하거나 이름 모를 꽃에서 흘러나오는 향기에 취해보기도 하고 무리 지어 웃는 20대의 젊은 청년들을 보며 부러워하거나 추억에 잠기곤 한다. 해결점을 찾기보다는 이 지점에서 보이지 않는다면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그 상황을 재연하고 가볍게 머리를 굴려본다.


모든 문제들이 걸음으로 풀리지 않는다.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땐 그 상황에 직접 부딪치며 답이 나오기도 한다. 그저 사람에게서 얻는 위로보다는 나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 깨우치는 방법에 익숙해진 것이다. 괴로운 상황이 매번 찾아와도 이제는 피하지 않는다. 걸으며 생각하고 이겨내는 나를 믿으며 앞으로도 이겨 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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