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발적 떠돌이가 되기로 했다.

by 녹차파우더

가족의 품 안에 살면서도 외로움을 느낀다. 직장에서 모임에서 그 많은 사람들에 둘러 쌓여 있으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부족해지면 그동안 받았던 사랑은 무가 되고 서운한 감정만 남는다.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척, 원래부터 사랑받았던 척하며 조그마한 틈새에 파고들어 내가 나머지 부분을 채워주고 있는 것처럼, '내가 있어야 해, 당신들은 내가 있어야 100%가 될 수 있어' 라며 나의 존재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죽지 않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생각하고 혼자 상상하고 그 물음에 답하지 못하면, 내가 낸 문제를 풀지 못하면 수면으로 향하는 뱃길도 잡생각에 잠기고 배를 몰던 안내자도 참수당한다. 나의 쉴 틈 없는 고민들 때문에 세포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신체 경영은 항상 적자이다.


어느 날, 모든 일을 나에게 떠맡기고 동료들이 다 같이 놀러 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상했던, 생각했던 일이 정말 일어나고 말았다. 처음에는 서운한 마음이 들다가 몸속 어딘가에서 태워지는 석탄 덩어리에 누군가의 부채질로 인해 열이 오르고 있었다. 하루 종일 그 생각에, 그다음 날, 그다음 날도 활화산이 타오르듯 언제 그 문제를 꺼내어 불씨를 토해내야 할지 눈치만 보고 있던 찰나, 그들과 나 사이에 그어진 점선을 발견하게 되었다. 완전히 금을 그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같이 있다고 볼 수 없는 관계에 한강 다리를 두어 개 넘고서야 겨우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란 사람은 왜 이럴까? 왜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할까? 나는 그들과 왜 거리를 둘 수밖에 없을까? 의문은 점점 긴 꼬리가 되어 내장보다 더 길어져 풀 수 없을 정도로 꼬이고 꼬여버렸다.


사실 알면서도 귀찮아서 하지 않은 일이 있다. 나는 노력하지 않았다. 관계가 좋아지도록 그들에게 아부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이 오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생일에 나는 축하인사만을 건네줬을 뿐, 다른 누군가처럼 선물을 챙겨주거나 작은 간식도 내준 적이 없다.


누군가와 밥을 단둘이 먹게 되었을 때, 어색해지는 게 싫어 매번 거절하며 점과 점을 이으려고 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 입장에서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나는 어떤 모습인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본 적도, 궁금한 적도 없다. 먼저 선을 그은 건 내 쪽이었다.


선 안에서 자유롭다 번거로울 일 없다며 좋아했지만, 실상은 외로움을 택한 건 본인의지였다. 그러면서 관심만을 바란 나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일반적인 사이가 아닌, 외로울 땐 위로해주고, 할 일을 할 땐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내 입맛대로 움직여주길 바라는 마음을 그들에게 요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매번 관계에 얽매여 이리저리 움직이고 싶지 않다. 나는 앞으로도 그런 상황을 만나더라도 그때뿐이고, 변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안다. 그래서 자발적 아싸, 자발적 떠돌이가 되기로 했다. 타인의 사랑보다 본인 스스로 더 사랑하기로 했다.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 형태도 없는 마음이 움직일 때 매번 제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관계 속에 묶여 다리를 하나 내어주는 것보다 온몸을 붕대로 감아 '자아'라는 관에 들어가는 게 낫다.

휘둘리지 않고, 휘두르지 않는다. 담백하고 미지근하게 뜨거워 질듯 차가워질 듯한 관계의 온도를 유지한다.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혹시 그들이 손을 뻗어준다면 내키지는 않지만, 한 번쯤은 잡아줘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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