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앙 말고 포옹
거창한 추앙 말고 나 대신 네가 쉬어주는 숨을 쉬고 싶다.
나의 해방 일지란 드라마 덕분에 그동안 숨어 있던 추앙이란 단어가 어느새 사람들 마음속에 뿌리내렸다. 그저 나아가기 위한, 색다른 내가 아닌 그 모습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는 추앙, 그리고 감상평이 아닌 솔직하거나 혹은 처절한 내가 살아있는 일지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고, 그와 관련된 서적도 많이 출판되었다. 한 드라마가 사람들을 치유했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어둠이 아닌 여름 태양빛을 피할 수 있는 그늘로 만들어 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누군가를 추앙할 자신도 나를 추앙해달라고 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내게도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로 하는 위로보다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포옹이 그리웠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잊어야 한다고 하지만, 한 번 크게 데인 흉터는 마음에 더 큰 빈자리를 만들었다. 누구라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은 투명한 울타리로 둘러 쌓여 측은지심과 애정의 사이에서 받아줄 듯 말 듯, 동료와 친구의 기준이 모호한 사이처럼 그와 나 사이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토닥여주는 우정도 아닌, 부모님의 은혜로운 사랑과도 다른, 심장박동이 발끝부터 손끝까지 전해지는 두근거림이 가득한 누군가가 나를 추앙 말고 포옹해주기를 원한다.
나는 그 사람을 원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고, 애정 하지도 않지만 그는 여러 사람이 아닌 나만을 사랑하고 아껴주고 바라보며 한강변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그의 넓은 어깨로 막아주고 그의 재킷이 내 어깨 위에 걸쳐지는 것보다 살짝 닿은 손가락 끝으로 그의 온기를 받고 싶다.
뜨겁고 호흡 가쁜 입맞춤보다 따뜻한 체온이 담긴 손으로 내 뒷목을 쓰다듬어 주고 아무 말 없이 쓸어내리며 해가지고 밤이 되어도 그렇게 계속 머물고 싶다. 계속 함께할 수 없어도 아쉬움이 남더라도 기차가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불덩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나도 그 정도의 애정과 사랑이라면 건네주고 싶다.
어떤 관계로도 지칭할 수 없는 모호한 관계에서 오는 불안감 위에 우리는 정착하지 않고 계절이 바뀌면 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는 되지 못하더라도 시시때때로 변하는 감정에 그저 포옹으로 나를 너에게로 인도하고 너는 나에게 이끌어주었으면 한다.
들뜨고 달뜬 하늘이 너무나 감명 깊어 너에게 달려가고픈 나의 욕심을 꾸짖더라도 서로 마주 안아 그 달을 품은 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게 지구가 되고 너는 내게 달이 되어 각자의 다른 면을 지켜보고 응원하며 아주 조금씩 멀어지더라도 같은 우주에, 같은 은하수에 있는 걸 감사하며 살아 있는 존재가 가끔씩 부딪히는 교차점이 되더라도 서로 옆과 위아래를 머물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