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에게 삼시 세끼는 사치다.'라는 생각으로

백수가 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일한 기간에 그동안 놀지 못했던 보상을 잠과 음식으로 대신했다. 배달어플로 매일 음식주문하기 바빴고, 침대는 무거운 내 몸을 지탱하는 시간이 배로 늘었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방탕한 생활을 한 지 5일 만에 젓가락은 가래떡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떠도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을 못하고 뒹굴거리다 배고프면 그때서야 주문을 하고 음식을 가지러 가며 일어났다. 먹고 치우는 것도 귀찮아 보던 드라마가 다 끝나고 나서야 정리를 하고 흰 티를 입은 채 거실이나 방바닥을 쓸었다. 엄마의 등짝 스매싱은 피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화분 속 씨앗이 잎과 꽃잎이 피기도 전에 열매를 맺을 일 없을 것처럼 화분 속 씨앗은 물 한 방울 없이 그저 잠들어 있었다.
다행히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식탁에 앉아 구부정한 자세로 '슬기로운 산촌생활'을 보다 이 상황에 절로 웃음이 났다. 한 끼를 차리기 위해 여러 사람이 재료를 다듬고 양념을 만들고 불을 지피고 땀을 흘려가며 노동이 만든 밥은 비싼 돈을 주고 먹는 음식보다,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버리는 음식과 비교되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바삐 움직이던 젓가락도 멈추고 '이렇게 거한 식사를 먹을 자격이 있나?'라고 자신에게 물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했다.
농사짓던 시절, 대가족이 한 끼를 먹기 위해 하루종일 일해가며 번 곡식과 수확물로 간간히 굶주린 배를 달래기 바빴던 그때보다는 나은 지금이지만 상품이 돈으로 바뀌었을 뿐, 곳간에 쌀이 가득 들어 있는 부잣집처럼 통장에 찍혀있는 숫자에 안도하고 있는 나는 바로 식탁을 말끔히 치웠다.

책상에 앉아 펜을 들고 종이에 적었다. 백수 기간 동안 무얼 해야 밥을 먹을 수 있을지, 꼭 돈을 버는 일이 아니더라도 어떤 생산적인 일을 해야 챙겨 먹어도 괜찮을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우선 배달어플을 삭제하려다 어차피 다시 설치할 모습이 더 비참해 보여 비슷하지만 값이 저렴한 음식으로 대체하거나 가족들에게 음식주문하는 손가락을 말려달라고 부탁했다. 백수에게 일주일에 한 번 외식도 사치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폭발해서 모든 계획을 날리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다이어트도 되고 건강도 챙길 겸 큼지막한 달력에 먹고 싶은 음식과 날짜를 적어두었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날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거나 부족한 영양소를 채우기로 했다.
다음으로 일을 못하는 동안 내가 원하는 스토리로, 결말로 끝내기 위해 해야 할 모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무작정 적었다. 작지 않은 글씨로 연습장은 양 쪽 페이지를 꽉 채웠다. 욕심도 많고 욕망도 있는 사람이 감추고 숨기고 사느라 힘들었다며 스스로 다독였다.

각각 다른 모형들이 회사에 모이면 특이하거나 모난 부분은 숨겨야 같이 어울릴 수 있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들은 유독 그랬다. 원래도 스스로 별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사회는 그걸 받아주지 않았고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나마 뾰족한 부분으로 받아쳤지만 결말은 은근한 따돌림이었고 자존심을 부려도 소심한 성격에 스스로 퇴사를 하기도 했다. 결국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에 바늘구멍에 내 목을 넣겠다는 심정으로 회사를 다녔고 반복되며 받은 상처들은 또 다른 의미의 훈장이 되었다.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 또 반복될 일상들이라 예상이 되지만, 이번만큼은 인생 그래프에 출발선은 벗어나 꼭짓점은 찍고 싶어졌다. 노트에 적은 이 기록들이 짧은 기간 동안이라도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우선 빨주노초파남보 단백질 셰이크 7개의 맛을 1주일 동안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