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엿한 백수가 되기 위해서

백수에게 시간이란 더 없이 귀중한 투자금이다.

by 녹차파우더

직업이 없으니 어엿한 백수라도 되어보고자, 약 6개월 뒤에 달성할 목표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실천하기로 했다.


우선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큰 틀로 나눈 뒤 필요한 정보를 토대로 대략적인 목표를 눈에 잘 보일 수 있도록 메모했다. 돈과 시간을 적절히 분배하고 멈추지 않고 진행하기 위해 넘치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계획표를 세웠다. '백수 주제에 뭘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에게 어떤 지향점이 생기면 그걸 이루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집중력이 잠시나마 높아진다고 한다. 그걸 계속 이끌고 가느냐 마느냐는 환경적인 부분이나 본인의 끈기 혹은 개인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매번 위와 같은 상황에서 한 번도 끝까지 결단을 낸 적이 없었다. 계획대로만 실천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란 상상에만 빠져있고 정작 모든 시간은 그날그날 먹고 싶은 음식과 물질적 욕망에만 쓰였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안정적인 수입이 간절해졌고,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인생의 끝자락이 조금씩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다. 주변 환경이 변해가자 현실감이 다가왔다. 취업의 길은 점점 더 좁아지고 변하지 않고 그대로 간다면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시나리오 그대로인 삶을 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시간적 흐름에 무뎌지는 게 가장 두려웠고, 주변이 원하는 모습에 따라 혹은 안정선에 멀지 않게 근처에만 머물며 안도하기만을 바라는 변화 없는 내 모습도 싫었다. 성장을 이룬 사람들의 책과 영상을 탐하고 부러워하면서도 구매 전 장바구니에 가득 담긴 예비구매목록에 행복해하는 것처럼 '나는 아직 충분히 나아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야'라며 심리적 안정감에 만족하는 내가 안타까워 보였다.


오늘 퇴직금 금액과 퇴직수당을 확인했다. 기쁨도 잠시 장바구니에 담겨있던 예비구매목록들을 다 삭제했다. 그리고 계획에 필요한 준비물품이나 투자금을 다시 한번 재정립했다. 실제 실행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목표와 시간을 정하고 준비기간이나 서류, 필요한 절차는 1월 안에 끝내기로 계획했다.


6개월 뒤의 나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계획은 매번 수정될 수 있으니 그걸 가늠하기 위해서는 진지하게 임할 사람만 있으면 된다. 이것저것 도전하고 시도해보며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날리지 않고 그리고 안정적인 선에서 벗어날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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