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쉼터지 일터가 될 수 없다. 백수에게는 더더욱
방에서는 도통 일이 안된다. 학창 시절 공부를 할 때도 집에서는 절대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으니까. 독서실이나 인근 도서관 공부방을 주로 이용했다. 대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대학교 도서관이 공부하기 좋아져서 학교 죽순이로 살았다. 뭐 공부성적과 공부시간은 아주 별개의 문제이므로, 어쨌든 스트레스가 조금이라도 생길 일이면 집에서는 해결하기 쉽지 않았다.
코로나가 터졌을 때도 회사에 출근해서 일했다. 한 번은 카페 분위기를 내보려 조명도 설치해 보고 별다방 전용 배경음악을 재생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내 단어사전에 집은 딱 쉼터다. 따로 서재가 없어서일까 거실은 항상 엄마의 차지였고, 내 방은 놀이터였다. 더욱이 집순이라면 방에서 공부와 일은 들어올 틈이 없다. 약속이 없는 날이면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내향형의 공간이다.
그런 나라도 가끔 자유를 만끽하고 싶거나 답답하게 느껴질 땐 까끔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고는 한다. 한데 백수가 된 지금, 계획은 완벽한데 도저히 집에서 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조금만 오래 누워있어도 허리 한번 피고 책상에 앉아도 '나중에 볼 영상'이 담긴 폴더를 열면 어느새 시간은 저 멀리 가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이 들어 주변 독서실이나 별다방을 다녔지만, 한 두 가지의 불편함이 그 작업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는 수 없이 예전에 기타를 배우며 알게 된 연습실을 찾게 되었다. 보통 음악하시는 분들이 개인 연습이나 연주 혹은 레슨용으로 쓰는 공간인데 그때 당시에도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 꽤 있었다. 잠깐 이용했던 연습실 관리자에게 연락드려 봤더니 독서실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빈 연습실이 나왔다고 해서 만남 성사한 뒤 바로 계약했다.
연습실은 또 다른 나만의 공간이다.
스터디카페와 카페에서 불편했던 점은 짐을 둘 공간이 부족했다. 연습실은 3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이다. 그래도 스터디카페의 사물함보다는 크지 않은가? 매번 보부상 같은 가방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약속이 끝나도 마치지 못한 일이 있다면 집에 들르지 않아도 바로 연습실에 있는 도구들로 해결할 수 있다.
콘센트도 여러 개 준비되어 있어 노트북과 타 전자기기를 혼자서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과 그 공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 더욱이 음악 하는 연습실이라 외부 연주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방음이 되어 있어 내가 어떤 노래를 틀던 어떤 작업을 하던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관리자도 연습실 사람들을 문제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 한 터치하지 않는다. 이건 연습실마다 케바케다.
음악가의 작업 환경을 보며 라이벌 의식을 느낀다?
본인은 음악과는 정말 끝과 끝 사이에 있을 정도로 관계성이 없다. 처음 기타를 배우면서도 이론에서 포기한 정도이니 선생님 속만 태웠던 기억이 있다. 사실 예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연습실을 이용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방음이 안된 연습실을 몇 달 이용해 본 적이 있는데, 옆 방을 이용한 사람은 같은 마디를 몇 번이나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녹음을 계속했다. 그 작업이 반복된 횟수는 셀 수 없었고, 총 녹음한 시간은 5시간으로 기억한다.
연주를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기타의 경우 본 곡에 들어가기에 앞서 팬타토닉이라는 스케일 연습이 있는데 그 연주자는 꽤 오랜 시간을 공들여 기본을 연습했다. 음악을 배우는 사람들의 끈기와 노력이 가득 차있는 공간에 각자의 피나는 연습량을 몸 소 느끼며 머리 위에서 등까지 찌릿한 충격을 받았다. 그분들을 보며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백수라서 더 일정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직장인은 회사라는 일터가 있다. 프리랜서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일터가 있다. 백수에게는 그런 장소가 없다. 집순이라면 더 방에서 움직이기 힘들고 생각 전환이 쉽지 않다. 어차피 집에서 되지도 않는 몸무림을 치느니 회사처럼 다닐만한 공간이 있어야 했다. 목표가 있다면 더 필요한 조건이었다. 집에만 있는 것도 가족들의 눈치도 보이고 안정적인 공간으로 대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개인 작업을 위한 소호사무실도 있지만 아직은 그렇다 할 작업물도 없고 부족한 자신감 때문에 이 정도 선에서 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이 정도면 감지덕지하다.
하여 앞으로는 연습실에서 재미난 일들을 해볼 예정이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도 시도해 보고 포기했던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예전 학교 다닐 때처럼 죽순이로 지내보련다. 목표는 차질 없이 순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