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일에 울었으니 다시 일어설 수 있길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계획표를 확인하고 막상 책상에 앉았는데 소화도 되지 않고 뭔가에 억눌리고 답답한 마음만 느껴졌다. 배가 고파 드라마 한 편을 보면서 샌드위치를 먹는 중이었다.
여자주인공은 차에 부딪히려던 아이를 구하기 위해 도로에 뛰어든다. 옆에 있던 남자와 여자는 의사와 간호사로 사고현장을 정리하고 다친 사람들을 챙겼다. 남자는 여자의 상태를 보고 쉬라고 하지만 사람들을 먼저 구해야 한다며 구급차에 태워 보내자마자 여자는 쓰러진다. 병원으로 옮겨진 여자는 수술을 마치고 마취가 풀려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남자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시간이 날 때마다 여자가 누워있는 침대에 걸터앉아 자지도 않고 그녀의 옆을 지켰다.
남자가 잠들어 있는 여자에게 이제 깨어나 달라고 간절히 빌자 여자의 손 끝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자는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의식을 차린다. 남자는 원래 무뚝뚝하고 다정한 남자는 아니었다. 그녀가 깨어나서도 걱정했던 모습을 티는 내지 않고 자신에게 그녀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를 얘기하며 좋아한다고 말을 하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내내 눈물이 흘렀다. 연기를 잘해서 그 감정이 느껴지기보다는 전하지도 못할 수도 있었던 마음을 끄집어내며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와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내가 현재 어떤 상황인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혼자서 해결하고, 숨기고 드러내지 않고 항상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보냈다. 그래야 분위기를 망치지 않게 어울릴 수 있고, 그런 얘기들은 이제 할 나이가 지났으니까, 나도 평범하게 보여야 했으니까, 되지도 않는 연기를 몇 년째 지속되었다. 익숙해졌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진심을 보이는 모습에 '이제 속 시원하게 다 털고 싶다'라고,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커져버린 것이다.
밥을 다 먹고 눈물을 닦고, 자연스럽게 유튜브를 틀었다. 유튜브 홈에서 한 영상이 보였다. 예전에 구독했다가 구독 취소했던 영어선생님의 영상이었다.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한 때 관련 영상을 즐겨찾기 했던 적이 있었다. 결국 보지 않고 모두 지워버렸었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은 맨 처음 화면에 그 영상을 띄웠고 아무 생각 없이 그 영상을 클릭했다.
선생님은 영어 말하기에 대해 자신이 겪었던 시간들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슬픈 영화도 아니고, 슬픈 장면도 아닌데, 그 영상에 담긴 않은 온갖 고뇌와 노력의 시간들이 너무 처절하게 느껴졌다. 영어를 잘하기 위한 영상은 돈을 내지 않고도 무료로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모두 영어회화나 단어, 문법, 시험공부에 대해 알려주지만 직접 실천한 적은 많이 없었다.
우리는 그 결과와 목표에 도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자신도 이미 그곳에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내가 현재 하고 있거나 준비하는 공부나 배움을 해나가기 위한 과정을 계획하면서도 지키지 못한 이유는 아마 내가 충분히 그 안에 들어가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내가 계획한 일에 체크하기 위해서 달성하기 위해서 계속하다 보면 나도 곧 목표에 다다를 거라는 기대감만 가지고 실행에 옮겼다. 과정 중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유지하기 힘들 때 어떤 방식으로 이겨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영상은 많지 않다. 있을 수도 있지만, 딱 시청할 당시에만 깨닫고 금방 잊어버린다.
오늘 봤던 두 영상에서 '솔직함'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내 진심을 표현하는 건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관심 있게 본 사람들에게 한 번도 내 마음을 표현한 적이 없다. 항상 상대방 쪽에서 먼저 표현해 주기를 원했다. 상대방이 표현하지 않으면 마음을 접고 물러났다. 마음이 연결된다고 해서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관계는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것인데, 나는 서툴다는 이유로 마음을 꼭꼭 숨기고 표현하지 않았다. 밀당을 한 건 아니었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이별할 기미가 보이면 그런 쪽으로 눈치가 빠른 나는 먼저 선수를 쳐 관계를 끊어냈다.
상처를 받기도 주기도 싫어서 나는 마음의 문을 더 꼭 닫아 버렸다. 솔직히 귀찮았다. 나 혼자만 생각하면 신경 안 써도 될 일에 감정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니까, 점점 주변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런 사람이라고 지내며 쓰고 있던 가면의 금이 조금씩 생기고 있던 모양이다.
무의식적으로 봤던 영상에서 위로를 받은 것은 아니다. 그냥 지나간 과거에 했던 대하는 내 모습이 참 못났구나라고 느껴졌다. 혼자서 한다면서도 결국 가족, 친구, 동료에게 도움을 받았을 텐데 가벼운 거라 넘겼을 것이다. 사람과도 선을 지키며 시간을 보낸 나는 '내 일에도 그렇게 빠져들지 않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우는 일이 많지 않은데, 실컷 운 덕분에 참지 못한 마음속 응어리가 조금 풀렸다. 사람의 관계와 계획을 실천하는 게 무슨 연관이 있는지 질문을 할 수도 있고 의아해 할 수도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내 일에 관해서도 나는 솔직하게 대하지 않았음을 고백하는 글이다. 변수도 있고, 100% 그래야 한다는 보장도 없다. 당면한 문제에 도망치지 않고 솔직하게 부딪혀 보는 게, 어쩌면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고 앞으로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라 다짐하고 다시 책을 핀다.
쿠팡플레이-사랑은 계속될거야 어디까지나-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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