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깨닫게 되면 제대로 된 건 아무것도 없다는걸 알게 되지.
복잡했던 머릿속이 한 20% 정리되니 잠깐 쉬었던 글이 생각났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서도 9시간을 일터에서 보내서 피곤하니 미루고,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해서 항상 눈에 보이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또 미루기 바빴다. 사실 어느 정도 쓸 틈은 있었지만 쓰지 못했던 이유는 쓸만한 주제를 찾지 못한 것도 있지만, 완전히 몰입해서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 뭐 얼마나 노력할 게 있다고, 스스로에게 제대로 된 목표도 없으면 일단 콩으로 된장을 쑤듯 계속 쓰라고 달래서 겨우 한 쓴다.
계획표는 완벽한데, 사람이 너무 엉망이라 3월부터 시작한 D-DAY는 오르락내리락없이 평평한 선을 이룬다. 오늘 드디어 맥박이 뛰었다. 최근에 우연히 남과 남의 연애프로그램을 보고서 잊고있던 달달하고 애틋한 감정을 느겼다. 말도 많고, 사람들 인식안에서 그들이 모습이 어떻게 보이고 평가되는지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 그저 공감하는 사람들의 댓글을 보며 드라마같던 두 남자의 당당하고 솔직한 마음에 괜히 내가 사랑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남녀가 사랑을 해도 무심했던 내가 그들이 보여준 대화와 행동을 보며 아무나 붙잡고 나랑 계약연애하실래요? 라고 말하고 싶을정도로 사랑이 하고 싶어졌다.
사람을 만나기 앞서 아무것도 준비되지 못한 내 외모를 보고 아, 이거는 안되겠다 싶어 주섬주섬 운동복을 입고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공원에 도착했다. 가볍게 걸음을 걷다, 욕심을 내서 달리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어깨에 있던 곰이 다리에 매달렸는지, 도저히 다리를 들어올릴 수 없었다. 겨울을 나는 동안 겨울잠을 자고 야생동물이 겨울을 나듯 음식의 소중함을 느끼며 몸을 키운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코끼리 다리를 들어올릴 줄이야.
채 5분도 뛰지 못하고, 가쁜 숨을 몰아내쉬었다. 몇년 전만 해도 15분에서 20분 정도는 가볍게 뛰었다. 조금 쉬었더니 운동이라고는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꾸준히 오래 하지는 않았지만, 비공식기록이지만 플랭크를 5분정도 버텼던 나인데, 그 동안 스스로를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챙기지 못한 시간들이 후회되었고 녹이 슨 고철이 된 것 같아 슬펐다.
여자 댄서들이 나왔던 모 프로그램에서 메가크루미션 중 연습하는 장면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서로 호흡하며 맞추는 씬에서 모니카가 립제이에게 '무겁다, 무거워!'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프로그램 방영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그 당시 립제이는 무릎 부상이 있었다고 했다. 무릎 부상도 아니고 고작 다리 하나 드는게 이렇게 힘들 일인가? 라는 생각에 망연자실 했고 자괴감도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속에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내 몸을 빤히 쳐다봤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처참했다. 사랑을 하는데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고 다들 말하지만, 내 몸 조차 아껴주지 않는데 어찌 상대방에게 이런 나라도 사랑해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숫자로 말하지 않아도 눈대중으로 견적이 나온다. 꾸준히 해도 꽤 오래 걸릴 일이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흘러내린 찰흙을 다시 다듬어 멋진 조각상으로 만들어 내고 만다.
셀카도 안찍은 지 꽤 되었다. 사진첩에 마지막으로 찍었던 사진속에 나는 해맑은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정도면 아직 괜찮겠지, 라는 망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바라보니 꽤 심각하다는걸 알았다. 아, 갈길이 멀다. 달디단 유혹을 이겨내어 연애하기 프로젝트를 시작은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나이만 먹고 아무것도 안한 여자여, 올해는 썸의 'ㅆ'이라도 닿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