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서영 Mar 31. 2021

맘충기

워킹맘 다이어리

"과장님, 방금 하신 그 말 저에게 영감을 줬어요."


함께 빠네 파스타를 먹던 과장님과 동료는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우면요. 그 중에 반이라도 살면 성공한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 식물이 꼭 저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저라는 사람 반만 살아남아도 성공한거죠.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리송한 표정의 과장님. 과장님이 점심시간 종종 우리에게 전하는 식물에 관한 이야기, 자신의 베란다 정원에 관한 이야기가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정작 과장님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식물에는 관심도 없던 내가 점심시간에 들려주는 과장님의 내 새끼 자랑에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상상이 텃밭 신청을 이끌고 이번 주말부터 주말농장을 가게 한 것 까지 그 과정을 과장님은 전혀 모르고 있다.

베란다에서 사는 식물은 통풍도 안 되고, 햇볕도 밖에서 자라는 식물만큼 받지 못 하고, 벌레가 한번 들어오면 베란다가 협소하기 때문에 삽시간에 다른 화분으로 옮아 쉽게 병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저 살아있음으로도 큰 위로가 되어준다.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식물이 꼭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한다. 식물이 자라는 양태를 관찰하는 것처럼 내 글이 어떻게 읽히고 있는지 그 양태를 지켜보는 요즘이다. 어제는 "서영이가 쓰는 글, 사춘기 같아!"라는 말을 두 번이나 다른 곳에서 들었다. "옛날 자기 모습 보는 거 같다고." , "지금 내 모습 보는 거 같다고." 그런 말들도 함께 따라왔다. 사실 앞 문장보다 뒷 문장이 더 마음에 든다. 지금의 내 모습. 사춘기라고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고, 갱년기라고 하기엔 나이가 너무 어리다. 사춘기와 갱년기 사이, 그렇다면 '맘충기'는 어떨까.


스스로 혹은 일정 집단을 벌레 취급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엄마라는 존재가 벌레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느낀다. 모든 엄마들이 공감할 순 없겠지만 나는 내 안에 나오고 싶어하는 무언가 때문에 마음이 간지럽다. 그것을 뱉어내지 않으면 내 존재가 사라질 것 같은 위기의식 속에 늘 살고 있다. 내 sns 프로필 사진을 아이 얼굴이 아닌 내 얼굴로 해놓은 이유. 그거라도 내 얼굴로 해놓지 않으면 내가 사라질 것 같기 때문이다. 같은 개월수 아기 엄마들의 프로필을 보다가 어째서 나라는 사람은 이런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걸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무엇하나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성격 탓일까.이상한 아집일까. 나보다 1년 늦게 아이를 출산해 200일이 된 아기를 키우는 내 동생의 브런치 글을 읽다가 울었다. 나만 느끼는 간지러움이라고 여겼는데 실은 너도 그 간지러움을 느끼고 있었구나. 난 다른 엄마들과 달라! 라고 외치며 대단한 자부심으로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반은 죽고, 반은 살겠지. 죽어가는 마음 속에서 그나마 살 수 있는 것들을 위해 이 정원을 지켜오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엄마가 처음 담배핀 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