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나도 할 수 있어야 해
영화 <더 와이프>, 비욘 룬게(2019)
영화 <미나리> 윤여정 배우의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소감이 온라인상에서 뜨거웠다. 수상소감 말미에 윤여정 배우는 "아들 둘이 나를 일하러 가게 만들었다"면서 "엄마가 일을 열심히 해 이런 상을 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마 이 글을 쓰게 된 모든 원인은 이 대목에서부터 인 것 같다. 윤여정 배우의 인터뷰들을 읽어보다보면 코가 시큰하다가도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최고 말고 최중으로 살자는 인터뷰도 매우 좋았고,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것도 방송국으로 아르바이트를 간 것이 시작이었다는 것도 좋았다.
윤여정 배우와 함께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후보에 함께 있던 글렌클로즈. 윤여정 배우와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은 배우다. 오랜 배우생활도 그렇고, 일하는 엄마 노동자의 삶도 그렇고. 그런 면에서는 <더 와이프>라는 영화가 글렌클로즈라는 배우의 삶을 상징적으로 점철하는 것이다. 어찌저찌해서 나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글렌클로즈 배우의 골든 글로브 수상소감까지 이끈 것이다.
"이 인물을 연기하는건 제게 개인적인 의미가 있는데 저희 엄마가 생각나거든요.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아빠를 위해 쏟아부으셨는데 엄마가 80대가 되고 저한테 말씀하셨어요. "난 아무 것도 이뤄낸 게 없는 것 같아." 그건 정말 옳지 못 했어요."
- 글렌클로즈 배우의 골든 글로브 수상소감 중
왼쪽 남편 조셉, 오른쪽 아내 조안대략 <더 와이프>를 둘러싼 영화평들은 이랬다.
"나르시시트 가족 구성원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는 큰 공감을 일으킬 영화"
"이 영화에 나오는 남자들은 전부 다 찌질하다"
"잔잔하고 어떤 면에서는 진부한 소재인데 지루할 틈이 없었다"
글을 가르치는 교수와 글을 배우는 학생으로 만난 조셉과 조안. 두 사람 모두 글을 쓰는 작가라는 점에 나는 조금 더 주목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는, 나르시시트 남성에게 착취 당한 여성의 비참한 삶을 다루는 영화로 더더욱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다 본 뒤 또 돌려보았을 때는 영화 <판타스틱 플래닛>를 상기시켰다. 동물과 사람의 역할을 전복시켜 보여주어 사람역할에 외계인을, 동물역할에 사람을 두었던 <판타스틱 플래닛>. 이 영화는 세상에 대한 생경함을 안겨주었는데 <더 와이프>에서도 남자와 여성의 성별을 뒤바뀌어 보여주는 비슷한 생경함을 느꼈다. 성역할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을 뿐 아니라,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착취 당하는 건 여성인데도 말이다.
아내, 킹메이커. 남편의 외투를 받고, 매번 남편의 약을 챙겨야 하고, 빵 부스러기를 닦아주어야 하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성실히 아내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지만, 서재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서재의 주인은 조안이었다.
사람들은 이 영화의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을 영화 말미에 나오는 원테이크로 조안(글렌클로즈)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씬을 꼽는다. 하지만 나는 서재 문을 열어달라고 울부짖는 아들의 울음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글을 쓰는 조안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씬을 꼽겠다.
이런 경험들로 제가 배운건, 여자들은 돌봐주는 사람으로 기대되잖아요. 아이나 남편, 파트너를 돌봐줘야 하는 사람이라구요. 하지만 자신만의 성취를 찾아야 해요. 자신의 꿈을 따라야 해요. "나도 할 수 있어, 그건 나도 할 수 있어야 해." 그렇게 말해야 해요. 제가 어렸을 때 복서가 될 운명이었다는 무하마드 알리를 보면서 저도 배우가 될 운명이라고 느꼈어요. 디즈니 초기 영화와 헤일리 밀즈를 보면서 나도 저거 할 수 있어! 하곤 했죠. 그리고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있어요. 올해 9월이면 제가 배우로 일한지가 45년째고, 이보다 더 멋진 삶은 상상할 수가 없네요.
- 글렌클로즈 배우의 골든 글로브 수상소감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