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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May 13. 2021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이은경 저, <오후의 글쓰기>(넥서스,2021)

쓰고 싶으신가요? 잘 쓰고 싶으신가요? 좋습니다. 그래서요? 그렇다면 써야죠. 잘 쓰지는 말고요. 일단 쓰자고요. (99~100쪽)


벌써  해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연초만 하더라도  정도 시간이 지나면 뭐라도 되어있을  알았다. 여러 가지 버킷리스트들에는 해내서 엑스자를 과감하게 그릴  알았는데 현실은 버킷리스트 옆에 줄줄이 캡션을 달고 있었다. 오늘도 퇴근길 횡단보도를 건너며 생각했다. , 역시……. 역시  원고는 (책으로)  내는  좋겠어. 횡단보도를  건너고 코너를 돌면서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러다가 글들이 먼지처럼 쌓여가기만 하면 어쩌지. 공개된 일기장이나 살아간 흔적 정도로 남아 버리면 어쩌지. 글이 나아지고 있기는 한걸까? 정말 열심히 '쓰기만 하는 사람' 정도로만 머물러 있는거라면 이대로만 유지가 되어 글쓰기의 동력까지 잃어버리면 어쩌지? 아이를 픽업하러 가는 하원길에 아기엄마가 하는 고민이라는 것이 이래도 되는 것일까? 온갖 걱정들이 그림자를 따라 꼬리처럼 길게 늘어섰다. 그런데 웃긴건  모든 고민들엔 하나의 전제가 있었다. 결과물을 내건  내건 내가 계속 글을 쓴다는 .


우리동네에는 참새방앗간이라는 인문학공동체가 있다. 참새방앗간 토요글쓰기반에 들어가 함께 글을 쓴지 3개월 정도 시간이 흘렀다. 글쓰기 선생님을 비롯해 토요글쓰기반에는 일곱 명의 문우들이 있다. 이제는 얼굴을 마주하면 절로 미소가 머금어지는 사이가 되었다. 나이와 상관 없이 서로를 누구누구쌤이라 부르는 문우들은 토요일마다 모여 글 같은 말들을 숨도 안 쉬고 서로의 얼굴에 뱉어낸다. 선생님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쌤, 방금 하신 그 말씀 글로 쓰시면 되겠네요"라는 말이 절로 뱉어진다. 그러면 선생님들은 "글을 써야하는데", "그래도 글을 써야해"라고 반복적으로 말하면서 아련하게 고개를 떨구신다. 글을 써야한다는 말들은 스스로에게 하시는 말씀 같다.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글을 쓰고 싶어하신다. 글을 쓰고 싶어 토요일 아침마다 젖은 머리로, 맨 얼굴로, 잠옷차림으로 화상을 킨다. 글을 쓰고 싶어서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서점으로 오신다. 서점으로 오는 길 걸음걸이 마저 '글 ' 그 자체인 선생님들이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어갈 수 있다는 행복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당신은 돌아갈 수 없다. - 최은영, <몫> 미메시스(32쪽)

  

요즘 나를 관찰해보면 글 보다는 글쓰는 사람에게 관심이 더 많은 것 같다. 최근 읽고 있는 책들도 대부분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오늘 소개하는 책 <오후의 글쓰기>를 쓴 이은경 작가님도 그런 성향의 분이다. 이은경 작가님은 학교 선생님이었다가 전업작가가 되면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그만두셨다고 한다. 책 첫 장에 프로필만 읽고도 이분이 정말 '찐'임을 알아차렸다. 얼마나 글이 좋으면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하셨을까.


이 책은 글쓰기를 숙제처럼 끙끙 앓으며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으며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 이은경 작가님은 그런 글쓰기를 일명 '어른의 글쓰기'라 칭한다. 어른의 글쓰기란 어릴 때 시켜서 하는 숙제 같은 글쓰기가 아닌 온전히 스스로를 위한 행위이다.


이번주 한 기사를 읽었다. 슈돌에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사유리가 출연했다는 기사였다. 사유리는 비혼모가 되었지만 자신이 비혼홍보대사처럼 오해 받는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냥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걸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사유리씨가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처럼, 나도 글쓰기를 통해서 결과가 아닌 과정을 보여주고 싶은걸지도 모른다. 단숨에 내려적는 한 줄 문장이었다면 글을 쓴다는 행위가 이렇게 끙끙대며 힘들어 할 일이 아니었을거다. 삶도 미완이고, 삶이 미완이기에 글도 당연히 미완일 수 밖에 없어서 글로 삶을 채워나가고 삶으로 글을 채워나간다. 조금씩 넘어갈 수 있다는 행복을 이미 알아버린 나는 글쓰기를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언제 요단강을 건너버린거고, 언제 자정을 넘겨버린걸까. 이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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