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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Oct 26. 2021

할머니 손은 약손

워킹맘 다이어리

출근을 하자마자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기도 전에 아이를 데리러 택시를 탔다. 분명 아침엔 이렇게 심하지 않았는데. 이번이 올해 가을에만 네 번째 조퇴다. 


절절 끓는 몸으로 계속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보챈다. 집안에 있는 동화책을 서너 번은 통독한 후에야 겨우 낮잠에 들었다. 아이의 뜨거워진 몸에 차가운 두 손을 갖다 대며 열을 식힌다. 이런 순간이면 나를 돌봐주시던 할머니가 떠오른다. 


차갑고 주름진 손으로 내 이마를 짚어주던 할머니의 약손. 할머니의 노래를 부른다. "할머니 손은 약손이다. 쑥쑥 내려가라. 먹고수워(먹고싶어) 먹었다." 


할머니의 노래는 30년 만에 엄마의 노래가 됐다. "엄마 손은 약손이다. 쑥쑥 내려가라.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우리 아기." 그동안 불러보지 않았는데 저절로 입에서 읊게 되는 노래. 아이는 까무룩 잠이 든다. 두 시간을 내리 자던 아이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손길을 바라보다 한 시간을 더 내리 잤다. 


아플 땐 약을 먹고 병원을 가야지. 내가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참지 말고 나가기 밖에 없었기에 약손이란 건 잊고 산지 너무 오래되었다. 내 손이 약손이라고 깨달을 겨를 없이 그렇게 깜빡 어른이 되었다. 두 손으로 아이를 어루만지다 보니 비로소 약손의 효능을 발견했다. 약손이라는 건 정말 있다. 약손이 약손일 수 있는 건 두 손에 담긴 '절대온도' 때문이다. 아이의 몸이 뜨겁다면 약손은 차가워지고, 아이의 몸이 차갑다면 약손은 뜨거워진다. 언제까지 한결 같을 것처럼 그대로 거기 있는 온도.  


약손의 절대온도. 너무 오래 세월을 돌고 돌아 나에게 온 그 대단한 깨달음이 아이를 재우다 깜빡 잠들어 깨어나 보니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어 있었다. 어디가서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마치 꿈결에선 말이 되었는데 잠에서 깨보니 말이 안 되는 꿈을 꾼 것처럼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어있었다. 잠에서 깬 아이는 비몽사몽 한 얼굴로 내 입술에 자기 입술을 가져다댄다. 너한텐 얼마나 돌고 돌아 이 온도가 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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