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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Dec 20. 2021

오랜만에 고모네 집에 들렀다

워킹맘 다이어리

오랜만에 고모네 집에 들렀다. 아이와 남편과는 결혼 후 처음으로 함께 찾아간 것이었다. 고모집은 언젠가 남편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공간이었다. 고모집은 열아홉 살까지 내가 살던 곳이고, 고모가 그 집으로 이사를 간 후로는 여전히 가끔씩 고모가 차려주는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공간이었다. 할머니, 동생, 나. 이렇게 셋이 함께 바닥에서 자던 침실, 공부방, 안방까지. 그 안에 물건들은 전부 달라졌지만, 내가 살던 물건들과 추억들이 어제 일처럼 다시 떠오른다. 


그날도 베란다부터 거실과 부엌까지 따뜻한 햇볕이 들고 있었다. 거실에 깔린 따뜻한 전기매트에 비스듬히 누우니 저절로 베개를 찾게 된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노느라 분주하고, 어른들은 고모가 깎아준 백화점 과일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느라 바쁘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고모와 고모부 지인 이야기를 듣다가 웃었다. 


가족과 다시 도심 속 구석에 자리한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생각이 많아진다. 인자한 얼굴을 한 고모와 고모부의 얼굴. 그 얼굴들은 무수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행복한 삶이란 뭘까. 잘 산다는 건 뭘까. 돈과 명예를 좇던 내 모든 행적들이 그 얼굴들로부터 한순간에 무력화된다. 마음의 반성 같은 것이다. 허경영도 아닌데 가끔은 얼굴을 봐줘야 하는 사람들이다. 나를 나이게 다잡아주는 사람들이다. 위인전에 나올법한 대단한 위인이 아닌데 그냥 나라는 한 사람을 계속해서 살려내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 단 한 사람이라도 살려내는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쓸모를 다해낸 것이다. 


아이가 할머니 침대에서 낮잠을 잔다. 이리저리 몸을 굴러대며 자던 아이는 할머니 머리맡에 베개처럼 가로로 누워 잠자고 있다. 딱 할머니 베개만큼 자란 아이. 할머니는 작고 말랑한 아이의 발을 조물거린다. 송골송골 아이 이마 위로 땀이 맺힌다. "할머니 불편하시겠다. 옆으로 옮겨드릴게." 웅크린 자세로 불편하게 누워있는 할머니를 위한답시고 던진 말이었는데, 할머니는 어쩐지 아쉬운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불편한 자세여도 좋으니 오래오래 곁에서 지켜보고 싶은 사람. 당신은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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