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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Feb 08. 2022

남편이 밥 얻어먹기를 포기한 것 같다

워킹맘 다이어리


남편이 다이어트를 시작한다고 한다. 소위 아가리어터라고 입으로만 다이어트를 하던 남편. 다이어트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아이스크림을 먹던 남편이 너무 웃겨서 깔깔 마녀처럼 배를 잡고 한참을 웃었다. 자기 전에도 그 모습이 생각나서 또 웃었다. 워킹맘에 출산이 두 달도 남지 않은 나로서는 작게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집안일이 참 버겁다. 그런 와중에도 좋은 엄마, 좋은 아내는 또 되고 싶어서 반조리식품이라도 매일 메뉴를 고민해왔던 나였다.

나란 사람 요알못이지만 라자냐는 잘하지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고 싶다는 건 딸과 남편이 이런 내 마음을 알아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나 보다. 


"나 샐러드 정기배송시켜먹을 거야."


남편의 이 말 한마디가 어딘가 시원하면서 섭섭하기도 했다. 내가 차려주는 밥이 마음에 안 들었나. 그도 그럴 것이 15분이건 30분이건 1시간이건 시간을 들여 만든 음식을 남편은 어쩐지 매번 잘 먹어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살림을 잘해주기를 최소한이라도 해주기를 결혼생활 내내 바라왔었다. 말로는 내 짐을 덜어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저번엔 임신해서 청소하기 힘든 나를 위해 로봇청소기를 주문했다. 그때도 지금과 같이 시원섭섭했는데 나중 되고 보니 세상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이번에도 아이 반찬 정기배송. 남편 저녁 샐러드 정기배송. 이러다 ai 아내를 정기배송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최근 몇 개월 동안 남편이 쓴 돈들이 나한테 직접적으로 쓴 돈은 아니지만 다 나 편하라고 쓴 돈들이다. 그래서 나한테 쓴 돈도 아닌데 이상하게 고맙다. 고맙다고 말도 못 하는 게 남편 돈은 곧 내 돈이기도 하니까 고맙다고 하기 뭐하지만... 여하튼... 고맙다. 남편 샐러드 시킨 김에 내 샐러드도 주문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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