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서영 Feb 18. 2022

극강의 미니멀 육아관

워킹맘 다이어리


반쪽육아


육아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하면 남편이 콧방귀부터 뀌며 " 했다고?"라고 반문할 것이다. " 했다고?"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기분 나쁘다. 그런데 막상 조금 지나고 나면 남편이 하라는 대로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모르긴 몰라도 남편은  고마운 존재다. 나의 육아관에 절반은 남편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우리 딸은 아빠한테 떼쓰다가 안 먹히면 엄마한테 달려오고, 엄마한테 떼쓰다가 안 먹히면 아빠한테 달려간다. 아빠를 엄마라고 불렀다가 엄마를 아빠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보면 미우나 고우나 남편과 나는 부모로서 한 배를 타고 있는 것이다. 나의 반쪽 남편. 다행이다. 육아관도 절반만 고민하면 되니까.


의연하기

TMI긴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내 성격에 대한 것이다. 내 성격은 성미가 좀 급한 편이고, 기우가 좀 많은 편이다. 아이에 대한 내 기우는 아이가 태아일 때부터 시작한다. 아이 출산 전에도 유서를 써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건 좀 오버인 것 같아서 출산 전에 남편에게 유언을 남겼다. "여보 중환자실에 들어가거나 의식불명이 되면 그냥 죽여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내 유언은 내 유튜브 채널에 도 남아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Y4ZaaxL1dI


그런 와중에도 내 남편은 내 말을 귓등으로 듣고만 있었다. 출산 후 미음을 먹는 나에게 "내 그럴 줄 알았다" "난 아무 걱정도 안 했다"고 했다. 누가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아이는 내가 깜짝 놀라면 내 놀라는 모습에 놀라 울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놀라고 걱정되어도 아이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하다 보니 실제로 놀라지 않고 실제로 걱정이 안 되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돌발상황이 너무도 많은데 그때마다 의연하게! 놀란 토끼눈이 아니라 사막여우 같은 눈으로! 이게 육아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다. 어떤 상황이 와도 괜찮은 척해본다. 괜찮은 척하다 보면 정말 괜찮아지기도 한다.  


할 수 있는만큼만 하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내가 나를 안다고 착각하지만 아직 나는 나를 한참이나 모르고 있다. 육아를 하면서 그걸 더 뼈저리게 느꼈다. 이게 세월 때문이기도 한걸까. 나이가 드니까 체력이 더 빨리 방전되는 통에 더 쉽게 스스로에게 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은 이런 나를 보며 체력 아끼라고, 그러다 방전되니까 비축하라고 하는데 그건 참말이다.


아이가 아프다고 아픈 아이를 돌보는건 바로 엄마 뿐이라고 엄마가 엄마인 것에 젖어 밤을 새며 아이 골을 짚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밤에도 아픈 아이를 전 날 밤을 새는 바람에 돌보지 못 했다. 마음으로는 한결같은 사랑을 주고 싶은데 다음 날, 다다음날 주어야하는 사랑과 헌신을 하지 못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만큼 비통한 육아가 없다. 딱 오늘 할 수 있는만큼의 육아를 해야 한다. 나처럼 저질체력의 엄마라면 더더욱. 딱 거기까지만 하자.

 

너는 너, 나는 나

지 인생은 지 인생이지가 내 육아 모토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육아의 최종 목표는 '독립'이라고 나는 철썩 같이 믿고 있다. 이 때 독립은 정서적 독립과 육체적 독립 둘 다를 의미한다. 뭐든 간에 지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아이는 의사로 키울 거야, 내 아이는 판사로 키울 거야. 그런 목표 설정은 없다. (그런데 남편은 있는 것 같다.)


방목과 방치는 엄연히 다른 것이니까 어느 정도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는 것 또한 필요하고,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의무 또한 부모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런 선택적 방목이 있었다는 가정 하에, 때로는 부모가 하지 말라는 걸 굳이 하겠다고 부모를 이겨먹으면서 까지 해내 보는 아이가 됐으면 좋겠다. 부모 눈치 보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건 아이 인생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건 엄마인 나에게도 적용된다. 엄마 인생은 엄마 인생이지. 아빠 인생도 아빠 인생이지. 살을 부비며 사는 가족이라 하더라도 각자가 주체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더 일을 못 그만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족 구성원에게 불화가 닥치더라도 최대한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살고 싶다.


남편도 남편 인생을 즐길 수 있게, 사고 싶은 거 사고 놀고 싶은 거 놀았으면 해서 가끔 외박을 허락한다. 마찬가지로 남편도 집순이인 나를 위해 아이와 함께 잠깐 외출을 해줄 때가 있다. 아직 자기 통솔력이 부족한 영유아지만, 놀고 싶을 만큼 원없이 놀게 해 주고 가끔 간식도 과하지만 본인이 먹고 싶은 만큼 먹게 하는 편이다. 하물며 양말 하나, 헤어삔 하나도 본인이 신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고르게 한다. 앞으로도 크게 다르게 키울 것 같지는 않다.


발육아

육아 4년 차. 육아에 엄청 크게 뜻을 깊게 두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육아가 체질인 사람도 아니라서 어떻게 하면 육아를 잘하지 심도 있게 고민해본 적은 없지만, 어떻게 하면 중간 언저리를 가볼까 고민한 적은 많다. 그런 과정에서 육아 바이블이라고 생각하는 책이 두 권이 있는데, 최희수 작가님의 <푸름 아빠 거울 육아>와 박혜란 작가님의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다. 거울 육아는 엄마 스스로의 삶을 반추하며 내면에 미성숙하게 남겨진 내면 아이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방법을 다룬 책이고, 박혜란 작가님의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은 믿었더니 아이가 알아서 자랐다는 내용의 책이다.


두 책 모두 맥이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아이는 믿으면 알아서 자란다는 것. 발로 육아해도 잘 큰다는 것이다. 부모고, 엄마이기 이전에 스스로의 삶을 살기. 스스로가 제대로 굳건히 서있다면 아이는 저절로 큰다는 것이다. 육아가 체질이 아닌 사람으로서(육아가 체질인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님들이 키운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는지를 보면 신뢰가 되는 부분이다. 이런 멋진 분들이 계시니 어설프게 따라 하다가 망언을 일삼는 나 같은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과 재밌어서 결혼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