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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Mar 18. 2022

남편 다이어트 관찰일지

워킹맘 다이어리

남편의 다이어트 1 ,  9시가 넘어서야 퇴근한 남편은 묵직한 도시락 꾸러미를 내게 건넨다. 내일 낮에 나보고 먹으라고 한다. 다이어트가 아니었다면 오늘 저녁 먹을 도시락이었던  같은데 남편은 냉장고에서 다이어트 샐러드 도시락을 꺼낸다. 오늘 점심에 내가 먹다 남긴 돈가스를 보더니 "돈가스랑 먹어도 되지 않아?"라고 묻는다. "편육이랑 먹어도 되지 않아?"라고   손에 어디서  건지   없는 편육을 흔들며 말하는 남편. "여보  다음 브런치 제목은 이거다"라고 답했다.


혼자 식탁에 앉아 혼잣말인지 나한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을 시작한 남편은 "샐러드가 맛있녜, 포만감이 있녜, 편육이랑 곁들여먹으면 딱이녜, 왜 샐러드 소스가 없는 건지 배송이 잘 못 온건 아닌지" 불만인지 칭찬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을 뱉는다. 네 살 딸아이가 아빠의 금쪽같은 편육을 뺏어먹는 모양이다. 차라리 잘 됐다 싶다. 아이는 먹고 남편은 덜 먹는 구도가 훨씬 보기 좋았다. 남편은 이제 좀 덜 먹을 때도 된 것 같다. 아쉬운 얼굴을 한 남편은 딸 아이 머리를 살살 쓸어내리며 "내일 아침에 편육 잘라서 반찬으로 주라"고 한다. "이렇게 먹으면 1kg 빠졌겠지?"라고 말하는 남편. 식탁에 올라가는 반찬수가 줄어든 대신 남편의 말수가 엄청 늘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화장실에서 비둘기 날개 파닥이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 배탈 났어?" "응, 디톡스 중이야." 첫날부터 저러니 걱정이다.


그 후로 남편은 배달 오는 샐러드를 외면하고 폭식의 나날을 보냈다. 왜냐하면 샐러드를 걸러야만 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났기 때문이다. 일주일 동안 좋은 일이 있었다. 좋은 일엔 좋은 술과 좋은 안주가 따라오기 마련이니까. 일주일 동안 안 좋은 일도 있었다. 그럴 땐 좋은 술과 좋은 안주로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남편은 일주일이 지나서야 다시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배달 오는 샐러드를 반은 버리고 반은 다른 음식과 곁들여먹기 시작했다. 또 어떤 날은 야근을 하고 온다고 했다. 야근을 예견한 남편은 저녁에 먹을 샐러드를 미리 챙겨가기도 했다. 물론 야밤에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며 무언갈 먹어댔다.


"아무도 모르잖아. 샐러드 만드는 사람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잖아."


괜히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부엌에서 하는 남편이었다. 그런 남편이 웃기고 귀여워서 피식거리면 남편은 또 놀란 생쥐처럼 먹던걸 1초 정도 멈칫한다. 나는 그 모습이 또 웃기고 귀여워서 웃는다. 그런 일상이 계속될 때쯤 남편은 야밤에 내게 대뜸 들기름 막국수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들기름도 살 안 찌고 막국수도 살 안 찌잖아"라고 말했다.


"응, 살 안 찌지. 살은 여보가 찌지." 이건 차마 내뱉지 못 한 내 속마음이었다.


어느 날, 그러니까 샐러드 정기배송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인가. 남편의 배가 홀쭉하게 들어가 있었다. 화장실 앞에 서 있는 남편에게 나는 놀라서 살 빠진 것 같다고 큰소리로 외쳤다. 물론 결혼 전 그 홀쭉한 모습이랑은 거리가 있긴 했지만, 그렇게 야금야금 남편은 살을 빼고 있었다. 곁들여 먹은 음식들이 많긴 했지만, 곁들여 먹는 음식 속에 내가 방심하고 있을 적에, 아무도 모르게 샐러드 만드는 사장님도 모르게, 남편의 살이 빠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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