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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Apr 04. 2022

둘째 출산! 쿨병에 걸려버린 엄마의 후기 없는 후기

워킹맘 다이어리

D-2

출산 전 마지막 외식. 3,900원 대패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원 없이 먹어야지 싶어 누룽지와 냉면 후식까지 먹었다. 집에 가기 전 편의점에 들러 과자를 샀다. 남편과 노트북을 켜고 출산비용을 계산했다. 가족회의를 빙자한 후식 타임이었다. 외식에서 그렇게 많이 먹었는데도 간식 배는 따로 있어서 제로 맥주에 과자를 곁들여 먹는데 너무 맛있었다.


과자를 입안 가득 넣으며 첫째를 출산했을 때의 일을 되새겨보았다. 걱정, 또 걱정. 걱정밖에 없었던 때. 출산비용도 걱정이었고, 때마침 계약 만료로 이직 준비를 하는 남편에, 집 재계약 문제, 출산 휴가 후 복직, 폐에 물에 차는 폐부종이라는 합병증까지. 모든 게 걱정 꾸러미였고, 거의 매일 같이 악몽을 꾸었다. 출산 날에도 아이를 낳다가 죽을까 봐 남편에게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둘째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임신 기간 내내 내 모토는 조금이라도 아프면 참지 말고 병원에 가자였다. 마음이 답답할수록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내 몸, 내 컨디션 하나만 잘 지켜내자였다. 임신기간 몸은 고됐지만 정말 티끌의 걱정도 없이 지냈던 것 같다.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드는 밤이었다. 신기하다고, 아이를 키운다는 건 참으로 신기하다고, 3년 동안 이렇게 많이 달라진 우리가 참 신기하다고. 잠꼬대 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밤이었다.

D-1

출산보다 걱정인 것은 출산 후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일주일과 산후조리원에 있는 2주의 시간이었다. 총 3주라는 시간 동안 엄마 없이 지내야 하는 첫째 딸 말이다. 한 달 전부터 어린 딸에게 엄마의 긴 잠복기를 이해시키려 이런저런 말들을 건넸지만 네 살 우리 딸은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건지 아리송하다가도 해맑다가도 그런 거 됐고 나 좀 봐달라고 떼를 쓰는 얼굴을 보였다. 그런 아이가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괜히 아이를 한번 더 안아보고, 한번 더 쓰다듬어보고, 한번 더 손을 잡아보는 것이다.


출산 전 날, 심심해하는 딸을 데리고 무작정 밖을 나섰다. 울면 어쩌나. 아이도 울고 나도 울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다 보면 며칠 전, 전화통화 중에 "산모가 울면 눈 나빠진다"는 우리 엄마 말이 생각나 자꾸 웃음이 나왔다. 우리 엄마는 정말 진지하게 말한 거였는데, 그 모습이 더 웃겨서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너무 진지했나. 우리 엄마 모습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오늘은 그냥 무작정 친동생 집에 갔다. 동생 딸이랑 내 딸이랑 제법 컸는지 이제는 아이들끼리 잘 논다. 무작정 찾아가도 반기는 가족. 이제 내일이면 그런 가족 한 명이 더 생기는 거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걱정하던 내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기대하는 사람이 되어있구나. 출산이 전혀 두렵지가 않다.

D-DAY

수술을 기다리는 마음, 수술을 하는 마음, 수술 후의 마음 모두 첫째와 전혀 달랐다. 몸은 첫째 출산보다 더 아팠지만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이 너무나 기뻐 몸의 고통마저 상쇄시켰다. 첫째 때는 울지 않았는데 뱃속에 아이를 꺼내자 들리는 우렁찬 아이 울음소리가 너무나 감사하고 자랑스러워서 눈물이 났다.


글 제목은 출산 후기인데 출산 후기로 쓸 말들이 별로 없다. 아픈 건 아픈 거고 아이가 태어난 기쁨은 기쁨인 것이라서. 나중 되어 아이들이 자라 있을 때 이 며칠의 출산고통은 찰나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쓸 말들이 손가락 사이로 떨어지는 모래처럼 사르르 사라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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