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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Apr 21. 2022

울지 않고 걸었습니다

워킹맘 다이어리

3주. 둘째를 출산하러 가고 처음으로 첫째 딸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 나보다 먼저 둘째를 낳은 엄마들은 출산의 고통보다도 첫째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고통스럽다고 내게 겁을 줬다. 훗배앓이? 젖몸살? 그런 거보다 첫째앓이가 가장 무섭다고 했다. 어떤 엄마는 조리원에 있는 2주라는 시간 동안 첫째가 보고 싶어 내내 울며 시간을 보냈고, 어떤 엄마는 첫째앓이가 무서워 아예 조리원을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엄마인 나도 첫째 딸인 그 녀석도 3주라는 시간 동안 서로를 찾는다거나 운다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리원에 있었던 2주라는 시간이 마하의 속도로 지나갔다. "내 딸은 날 안 찾아. 오히려 즐거워 보이는 걸." 주변 지인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면 "애착형성이 잘 돼서 그런 거 아니냐"라고 상대방은 반응하는데, 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3주 동안 엄마를 찾지 않는 건 애착형성이 잘 된 걸까 아니면 애착형성이 안 돼서 그런 걸까. 진짜로 모르겠고 헷갈린다. 


아침에 일어나 잠들기 전까지 젖, 젖, 젖이라는 수유 전쟁 조리원에 있는 2주 동안 나는 '처음부터 분유 수유'를 외쳤고, 신생아실에서 아이의 24시간을 케어해주었다. 덕분에 하루 두 번 있는 모자동실 시간에만 아이를 만났고 실질적으로 내가 직접 아이에게 분유 수유하는 시간은 하루 한 번 정도였다. 


방에만 있는 것이 지루할 때쯤이면 외출 신청을 하고 밖을 나가 걸었다. 나가서 산후마사지도 받고, 미용실도 가고, 피부과도 가고, 산책로도 걸었다. 임신기간에는 누리지 못 한 홀몸이라는 자유를 만끽했다. 아이는 꼭 엄마만 봐야 하나. 아이를 엄마가 돌보지 않았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져야 하나. 내 아이지만 내 아이를 남에게 온전히 맡기고 나 하고 싶은 것도 하고 그러는 때도 있는 거지. 돈이 좋을 때는 이런 것들을 만끽할 때다. 조리원에 있는 14일 하루 17만 원이 조리원에 내가 부은 돈이다. 24시간 아이를 맡아주고 내가 편히 쉬고 오는 값이라고 생각하면 아깝지가 않다. 조리원을 나온 뒤로는 산후도우미를 한 달 동안 쓰기로 했다. 그때도 외출해서 하고 싶은걸 다 할 거다. 


엄마와 딸이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첫째 딸아이를 돌보는 건 아빠인 남편이었다. 아이가 나를 찾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었던 건 남편 때문이다. 내 담당이었던 어린이집 하원을 남편이 하면서 키즈카페를 가거나, 백화점, 마트, 놀이터 등 순수하게 집으로 귀가한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남편은 오히려 일급으로 17만 원을 줘야 할 것 같다. 덕분에 아이는 어린이집 하원길에 당연한 듯 오늘은 어디 가자 말한다고 하는데, 다시 집에 복귀해서 어린이집 하원을 맡아야 하는 나만 아주 큰일이 났다. 뒷 일을 생각 않고 일을 벌인 야속한 남편이지만, 매일을 뭐라도 하고 싶어 발품을 판 남편이 고마운 것이다. 내가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산후조리 밖에 없다. 이렇게 산후조리를 잘하고 있건만 아직 몸이 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고 있다. 


"산후보약 해줄까?" 어제는 대낮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대뜸 산후보약을 지어주겠다는 엄마는 점심 먹고 산책하다 문득 30여 년 전 일이 떠올랐다고 한다. 없는 형편에 엄마의 엄마는 둘째를 낳은 딸이 조리를 잘했으면 하는 마음에 산후보약을 한 첩도 아니고 반 첩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한 첩보다 반 첩이라서 더 마음에 오래 남아있다고, 산책하다가 문득 그 생각이 나 나에게 전화했다고 한다. 그 마음이 꼭 벚꽃 흩날리는 봄날 산책로 같다고 생각했다. 1년 지나고 또 1년 지나고 이맘때면 한 번씩 찾아오는 봄처럼 엄마들의 마음은 비슷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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