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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Apr 27. 2022

우리가 처음 4인 가족이 된 날

워킹맘 다이어리

혼인신고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나. 그날은 주말인데도 서울로 출장을 가는 날이었지만, 앞으로 시부모님이  분들과 함께 신혼집 사전점검을 하는 날이기도 했다. 신혼집 사전점검을 마치고 출근을 하려는데 아버님이 나를 바래다주시며 꼬깃하게  접은 종이를 쥐여주셨다. 내게  편지라고 했다. 추운 겨울 두꺼운 코트 속에 오래 넣어두셨는지 편지가 따끈했다.


오늘은 둘째 딸을 데리고 조리원을 퇴소하는 날이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문득 아버님이 주신  편지 생각이 났다.  갑자기  편지가 생각이 났을까 생각해보면, 아버님이 오늘 같은 마음으로  편지를 쓰시지 않았을까 하는 이유에서다. 남남이던 둘이 결혼을  가족이 되고,  명이던 부부가  명이 되고  명이 되는 . 지구 어디선가 끈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도 나에게만은 생경한 , 가족.


그런데 이렇게도 생경하고 설레던 일들도 어느 순간 지나고 나면 아주 익숙한 일이 되어있다. 30 년을 생판 남이었는데 평생 남편이었던 것 마냥 익숙해져 다. 그러다 따로 산 세월보다 같이  세월이  길어지면 이런 마음들은 기억에서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리는걸까.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따뜻할  일기든 편지든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A4용지에  프린트된  장의 편지. 하나밖에 없는 둘째 아들의 신혼집을 보러 는 날이 아버님에겐 아들 장가보내는 날 같았나보다. 신혼집 사전점검 전   잠이   새벽에 편지를 쓰신다고 했다. 일산이 일산신도시도  됐을 무렵, 그러니까 30여년 전 자신의 신혼집을 보러가던 날도 꼭 이랬다고 했다. 아버님은 처음으로 갖게  며느리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고심하다가 며느리, 며늘아가가 아닌 서영이라는  이름 그대로로 나를 부르시겠다고 했다.


"집에 동생 와 있대. 엄마 뱃속에 이제 아기 없어."


 말을 듣던 첫째 아이는  윗도리를 들추더니  손을 모아  배에 귀를 가져다 댔다. "아직 남아있는데?" 딸아이는 장난스러운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집으로 냅다 뛰어갔다. 양갈래로  머리가 팔랑이며 뛰는 아이의 뒷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동생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첫째 아이에게 동생의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첫째 아이는 젖병을 직접 물리겠다고 하고 기저귀도 직접 언니인 자기가 갈겠다면서 벌써부터 언니노릇을 하려고 했다. 남편과 나는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뭐라도 하려는 아이가 대견해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졌다.



첫째 아이는 아빠인 남편이 돌보기로 하고, 둘째 아이는 엄마인 내가 돌보기로 했다. 나는 안방에서, 남편은 거실에서 각자 아이를 재우기로 했다. 이제는 분담이 아니라 전담제로 가야한다.


우리 4인 가족의 첫 날 밤, 신혼 첫 날밤보다 더 달콤하다. 남편은 어김없이  소리로 코를 골며 먼저 잠들어버렸고, 첫째는  옆에 껌딱지처럼 아빠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자고 있다. 둘째는 방금 분유를  먹고 트림도  하고  어깨에 볼을 대고 잠들어버렸다. 그 작은 입술에 더 작게 우유가 었다.


이제 정말 4 가족이 되었구나. 모든  따끈하다. 둘째 아이 몸도 따끈하고, 아이를 안고 있는  몸도 따끈하고, 4인이 된지도 얼마 안 된 따끈한 신상가족이다. 행복하다. 따끈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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