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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Jun 14. 2022

속초 한 달 살기 - 농사는 무슨

워킹맘 다이어리

둘째 출산휴가로 속초인 본가에 내려와 있다. 육아휴직 중인 동생이 내가 속초 한 달 살기로 본가에 내려간다고 하니 덩달아 내려왔다. 덕분에 본가는 아이들 울음소리, 웃음소리, 옹알이 소리로 가득하다.


그런데 웬걸.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딱 위층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 한 달 동안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고 한다. 온종일 드릴 소리로 아이들이 낮잠도 못 자고 울어댄다. 그 드릴 소리가 꼭 내 앞에서 들리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공사 소리가 적은 방을 돌아다니다 보니 아빠 서재방에 온 가족이 피신해있었다.

그 와중에 아빠는 컴퓨터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땅 같은 걸 보는 거 같았다. 대충 엄마와 대화 나누는 걸 들으니 500평 되는 땅을 살까 고민 중이라고 한다. 저번에도 친한 지인과 땅을 나눠 살까 고민하더니 이번엔 정말 진심인지 gps를 켜고 그 땅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 뒤통수를 보고 있자니 꼭 청약 당첨되려고 여기저기 청약정보를 뒤지고 새벽까지 밤을 꼴딱 새우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오늘은 아빠가 고민하고 있는 그 땅을 보러 갔다. 차 안에서 아빠한테 그 땅을 왜 사려는지 물었다. 농사를 짓고 싶다고 했다. "농사? 아빠가 무슨 농사." 농사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진심이 말로 튀어나왔다. 여태껏 글만 쓰던 전업작가가 무슨 농사. 전구도 하나 못 가는 사람이 무슨 농사. 아빠는 밭농사 말고 그냥 나무 심고 열매 따러 오고 싶다고 했다. 목이 좋으면 농사짓다가 전원주택을 지어 살 수도 있다고. 그렇게 우리는 아이 셋을 데리고 구불구불 산속으로 차를 끌고 갔다. 우리는 어느 소 농장 앞에 차를 세웠다.


여기서부터는 도로가 포장이 안 돼서 걸어가야 돼. 아빠가 말했다. 아이들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 산비둘기 소리, 뻐꾸기 소리, 맹꽁이 소리, 소울음소리. 영락없는 시골 동네였다. 나는 생후 2개월 된 아기를 아기띠에 매고, 동생 내외는 두 돌 된 아이 손을 잡고, 나머지 내 세돌 된 첫째 딸은 우리 엄마 손을 잡고 구비구비 아빠가 찜한 땅을 보러 갔다.


네비대로 한참을 들어갔는데도 결국 네비도 잘 안 잡히고 그 땅이 어디 있는지 못 찾겠어서 아빠에게 그 땅 보는 거 포기하자고 말했지만 아빠는 마치 여기 와본 사람처럼 네비도 안 잡히는 그 땅을 보러 앞서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아빠는 운전도  하는 사람인데. 과수농장 하려면 부지런히 보러 와야  텐데. 내가  것도 아닌데 마음속엔 포기가 들어서 있었다. 아빠 돈은 엄마 돈이기도 한데, 정작 엄마는 땅엔 관심도 없고 길가에  꽃이며 풀이며 온통 관심이 땅이 아니라 땅바닥에  있었다. 그사이 엄마는   클로버를  개나 찾았고,   손톱에 애기똥풀로 매니큐어를 칠해놓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아빠 빼고 사진을 찍었다. 그냥 우린 오늘 사진 찍으러 온 건가. 자연놀이를 하러 온건가. 우리 차가 주차되어있는 소 농장 앞에서 아이들과 소구경을 하는데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농장 있는 이쯤만 돼도 살 텐데."

아빠가 돌아왔다. " 봤어?" ", 봤어." 우리 중에  누구도 아빠에게  거냐  거냐 딱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새로 생긴 공원인데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자연놀이터가 조성된 곳에 우리 췄다. 한동안 비가 오던 속초였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왔었는데 비가   얼마  돼서였는지 하늘에는 청량한 구름이  있었다.


구름이며 나무며 뛰어노는 아이들이며 너무 아름다웠다. 아이들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셔터를 무진장 눌러대는데도 한 명이 예쁜 표정을 지으면  명이 얼굴을  보여준다던가,   웃는 표정을 찍기 너무 어려웠다.

우리는 공원 산책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렀다. 돌아가는 길에 바닷가에 들러 발목까지 바닷물을 담그다 집에 돌아왔다. 좋은 소고기에 좋은 와인.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업되어 평소에  하던 말들을 서로 술술 이야기한다.

동생이 아까 공원에서 아빠한테 " 사고  짓는  행복이 아니라 이런  행복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빠는  에 감명을 받았는지, 술에 취해버린 건지 했던 말을  하고  했다.


동생이 또 말 한마디를 거든다.


"아빠, 난 내 인생에서 오늘이 가장 행복했어."


행복. 행복이란 뭘까. 간단하고 쉽게 채워지는데 그게  공기 같아서 채워져있음을 쉽게  포착하기 어려운  같다. 마치  휴대폰 사진 폴더에 오늘 찍은 사진들처럼 찰나에 포착되는  장을 위해서 수백  수천 장을 찍어대는데 한 장에 행복을 전부 담기는 어려운 것. 그라고 어느  장도 버릴 수가 없는 . 행복이  별거냐고 백날 말하지만 진짜로 별게 아니다. 그냥 우리가 이렇게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수도 없이 모래를 매만지는 파도처럼 그렇게 행복은 오고 가는 파도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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