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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Jun 23. 2022

아름이에게

워킹맘 다이어리

내일부터 긴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오늘은 수요일 분리수거하는 날, 남편 퇴근 후 분리수거를 하러 혼자 집 밖을 나선다. 양손 가득 쓰레기를 들었는데도 양손에 든 만큼 버려야 할 쓰레기가 더 남아있다. 아파트 문을 나서다가 우편함을 보니 관리비 고지서가 꽂혀있었다. 우편함을 열어 관리비 고지서를 꺼내다 보니 웬 엽서 한 장이 있다. 영어로 마요르카라고 적혀있는 예쁜 엽서 뒷면에는 얼마 전 인스타 디엠으로 안부를 묻던 친구 이름이 적혀있었다. 내 친구, 아름이.


스페인에서 온 엽서였다. 친구를 만난 게 벌써 2년이 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을 준비 중이었던 친구. 몇 달 전에 센티해져서 30대가 되니 친구가 없다는 둥 술 마시고나 쓸 법 한 글을 인스타그램에 남겼는데, 친구가 왜 없어. 이렇게나 멀리서 내 안부를 묻는 친구가 있는데.


왼손에 엽서를 들고 분리수거를 하러 간다. 아이가 먹던 우유곽도 버리고, 기저귀가 가득한 종량제도 버린다. 쓰레기를 버리면서 친구에게 어떻게 답장할지 문장들을 떠올린다.


나도 너의 선택을 응원한다고,

나도 언제나 너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있다고,

나도 오래오래 너의 삶을 지켜보고 싶다고.


친구의 편지를 곱씹을수록  삶의  순간이 선택이었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연애를 하는 것도, 결혼을 하는 것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도, 아이를 양육하며 일을 하러 나가는 것도  순간이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친구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30대의 나이에 혼자 타향 길에 올랐다. 친구야말로 용기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용기가 용기인 것을 짚어준 친구에게 나도 너의 선택이 아주  용기였다고 말해주고 다. 지금 너무 너무 잘 하고 있다고도 말해주고 싶다.


장마라더니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습기 가득한 집에 하루 종일 에어컨과 제습기가 돌아간다. 아이 모빌도 돌아간다. 나는 엎드려 핸드폰으로 이 일기를 남긴다. 마요르카는 지금 날씨가 어떤지 검색해보니 먹구름이 조금 끼고 아마도 비가 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름아, 고마워. 넌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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