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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 소리가 켜지기 전에 눈이 먼저 떠진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확인하는데, 안 돼! 눈이 토끼눈이 되어있다. 복직 첫날인데 3개월 만에 복직인데 안경을 쓰고 출근해야 되다니. 그래도 출근은 내일도 해야 하니까 렌즈 대신 안경을 택한다.
오랜만에 해가 뜬 아침 집 밖을 나선다. 각자 출근하고 등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기분이 이상해서 더 뚫어져라 사람들을 쳐다본다. 구경하다 보니 통근버스가 저 멀리서 오고 있다. 오랜만에 타는 통근버스. 통근버스가 나에게 온다. 가슴 앞에 실내화랑 칫솔 이것저것 담긴 종이가방을 끌어안고 통근버스에 오른다. 사람들은 모르겠지. 출근하는 게 좋다는 게 말이 되냐고. 출근하는 게 설렌다니 말이 안 되잖아.
오랜만에 복귀한 사무실인데 오늘은 우리 팀이 코로나 자가격리로 전멸이라 혼자 밖에 없다. 아무도 없는 우리 팀 전화기를 다 내 앞으로 착신을 걸어놓았다. 3-4개월밖에 자리를 비웠는데도 바뀐 게 참 많았다. 바뀐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전화받느라, 원래 내 업무 하느라 조금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 보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그제야 정신없어서 손도 안 가던 커피에 손이 간다.
내일은 그래도 영양제도 챙겨 먹어야지, 점심에는 회사 앞에 도서관에도 잠깐 들러야지,라고 생각하며 퇴근한다. 이렇게 금방 퇴근시간이 왔다.
퇴근길 버스가 너무 빠르다. 오랜만에 타는 버스라 그런가. 내가 이렇게 폭주하는 버스를 매일 타고 돈을 벌러 다니고, 아이 보러 갔었구나 새삼스럽게 첫째 아이 키울 때 일이 떠오른다. 그때는 버스가 이렇게 빠른지도 몰랐었지. 그런 거 살필 겨를도 없이 지냈었지. 매일매일이 토끼눈인 채로 살았지. 거울로 아직도 토끼눈인 내 눈을 보는데, 아, 내 눈도 눈치챘네, 토끼눈이 될 때가 된걸 눈치챘구나 싶다. 그렇게 피곤하고 힘들다고 그래 놓고서 둘째 낳고 키울 생각을 또 하다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집에 와서 잠깐 시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시댁에 맡긴 둘째 때문에. 어제는 다행히 통잠을 잤다고 한다. 오늘로 딱 90일이 된 둘째. 이제는 주말에만 보는 둘째. 둘째도 둘짼데 그 어린것을 돌보는 어머님도 걱정이다.
그런 어머님은 나를 걱정한다. "고생했다고. 잘 지내라고." 전화기 너머의 말이 내 가슴에 콕 박혀서 눈물이 난다. 허겁지겁 전화를 끊어버린다. 안 그래도 토끼눈이 된 내 눈이 더 붉어졌다. 내일은 안경 쓰고 출근하면 안 되는데.
부랴부랴 첫째 하원하러 간다.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나오면서 첫째가 나한테 묻는다. "로아는?" 하원길에 항상 엄마가 힙시트에 로아 안고 자길 데리러 왔는데 오늘은 안 보이니 의아했나 보다. "조아도 로아 보고 싶어." "응." 저 조그만 애도 자기 동생이 보고 싶은데 내 배 아파 낳은 나는 얼마나 보고 싶겠어.
"로아 어제 할머니네 갔잖아."
"할머니?"
그러거나 말거나 놀이터로 냅다 뛰어가서 솔방울도 줍고 나뭇잎도 주워와서 비행기를 만들 거라고 한다. 덥다. 더운 여름이 돼서 이제는 매미소리가 들린다. 놀이터를 휘저으며 놀던 첫째는 솔방울만 한 주먹밥이 먹고 싶다고 집에 가자고 한다.
집에 가서 아이 주먹밥 먹이고 있다 보니 평상시보다 일찍 남편이 퇴근했다. 왜 이렇게 일찍 왔냐니까 나 걱정돼서 일찍 왔단다. 같이 밥 먹으면서 오늘 있었던 일 주저리 나 혼자 떠들고 나니 딱히 둘이 할 말이 없다. 피곤했는지 남편은 저녁 여덟 시도 안 됐는데 코 골고 먼저 뻗어버렸다. 남편 뒷덜미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보니 여름이 온 것이 왔구나 싶다. 내 걱정 때문이 아니라 본인 피곤해서 일찍 온 거 아니야? 엊그제 겨울을 보내준 것 같은데 벌써 여름이 오고 매미가 왔다. 하지만 이젠 셋이 아니야. 넷이다.